덕 윤리학의 흐름은 소크라테스
이 같은 역사 속에서 살펴본 덕 윤리는 소규모 공동체를 배경으로 발달한 것으로 행위를 지도하여 줄 도덕 원리 또는 규칙보다는 도덕 행위자 그 자체를 중시하게 된다. 이 때, 도덕 행위는 그 바탕에 소규모 공동체가 있기에 이는 누구나 식별이 가능하며, 그것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규모 공동체가 해체된 근세 계몽시대 이후부터 현대까지 덕윤리가 가지는 의미가 예전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이는 인물을 중심으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덕 윤리학의 부활에 관심을 불러일으킨 앤스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으로 돌아가 어떤 종류의 인간 또는 존재가 되어야 마땅하며 그러한 인간이 되기 위해 어떤 덕들을 지녀야 하는지를 탐구하는 것을 덕 윤리의 본령으로 삼았다. 즉, 이전의 주류를 이루었던 의무 윤리학에 철저히 반기를 들며 좋고 탁월함을 속성으로 하는 덕을 내세우게 된다.
이 뒤를 잇는 프랑케나는 앤스콤이 반기를 들던 의무 윤리학과 지지를 했던 덕 윤리학이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원칙 없는 성품은 맹목적이고 성품 없는 원칙은 무력하다’는 말로 그의 주장을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덕의 육성을 지향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시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이후 본격적인 현대적 덕 윤리의 문턱을 넘은 맥킨타이어는 자유주의 사회가 지니게 된 병폐의 원인이 공동체의 상실과 덕의 부재에서 있다고 보고 현대 공동체주의론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즉 덕의 육성을 필수로 보고 그 토대에 공동체 형성을 모색한 것이다. 이는 아래 제시된 글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와 같은 맥락에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에서 나타난 방법론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속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소유한 윤리적 신념들을 거부하지 않는다. 특히 그는 현명하고 덕이 있는 사회 구성원들은 충분히 신뢰할 만한 윤리적 신념들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맥킨타이어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개인의 덕과 공동체적 삶은 상호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 것이다. 또한 그는 덕의 개념을 정의할 때, 인간의 삶을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로 이해하는 방식과 관련시킨다.
나는 하나의 이야기를 살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 나는 이야기되어질 수 있는 나의 삶을 구성하는 행위들에 책임을 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체적 존재이다. 그들이 나의 이야기의 한 부분인 것처럼 나 역시 그들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즉, 행위의 중심에 행위자 자신을 놓고 타인이 존재하는 공동체 속에서 일관성을 가지고 서로의 덕을 인지해나가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덕 윤리는 칸트의 이론이나 공리주의에 비하여 공동체가 전제되어 지지만 이러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별적 행위자가 존중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된다. 또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좋고 탁월함을 덕의 속성으로 보며 그러한 덕을 행한 자의 행위와 선택을 평가하기보다 행위자 그 자신과 동기를 윤리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이는 덕스러운 행위가 그것을 행하려는 행위자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덕이 있는 개인이 행동을 한다면 그 행동은 덕이 있는 개인의 동기에서 발달한 것이므로 그 행위 또한 덕스러울 것이라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덕 윤리학의 흐름과 특성들을 살펴보면서 과연 덕 윤리학에서 말하는 덕이란 무엇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짧은 시간 덕 윤리학에 관한 책을 뒤적이며 내린 결론은 “행위자가 속한 공동체에서 칭찬받을 수 있는 행위를 행하는 덕(품성)”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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