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리 지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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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덕천리 지석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덕천리 지석묘
지석묘란 한국 청동기 시대 묘제중의 하나로 그 특징은 지상에 대석을 올려 봉분으로 삼는 형식인데 이를 지석묘, 고인들이라고 한다. 고인돌은 서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지중해 일대, 인도,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국의 동해안에 이르기까지 그 분포지역이 광범위한데 한반도의 고인돌은 이들과 모양은 비슷하나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듯하다. 동아시아 지역의 고인돌은 중국 동북지방이나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발생하여 한반도에서 널리 사용 되었으며 일본 규수지역으로도 전파된 무덤양식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 중심이 되어 널리 분포한다.
- 지석묘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를 살펴보면
① 개석: 지석위에 올려놓은 지석묘 표지가 되는 큰 돌, 상석이라고도 함
② 지석: 개석 밑에 놓인 괴는 돌
③ 적석: 개석 밑 지석주위, 때로는 개석 상부에 천석이나 역석을 쌓은 것
④ 묘실: 지석묘의 하부구조 중 매장 주체가 안치되는 곳
덕천리 지석묘는 경남 창원시 동읍 덕천리 군용지 안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적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는 지석묘 3기, 돌널무덤(석관묘) 5기가 발견되었고, 고 인돌의 무덤시설로 추정되는 동서 길이 17.5m, 남· 북 길이 0.56m의 석축이 확인되었다. 청동검(동검), 간석촉(마제석촉) 등 무기류와 장신구류가 출토되었 다. 외형상 상석을 구비하고 있어 지석묘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지표조사 당시에는 모두 6기 인 것으로 파악하였으나 3기는 하부에서 새시설이 확인되지 않았다. 대체로 남-북 축 선상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3기의 지석묘는 상석이나 묘광의 규모에 있어 차이가 있기는 하나 단이 지게 묘광을 파고 그 아래에 석곽의 유구를 축조한 점에서는 서로 공통된다. 개석을 한 겹 이상 덮고 개석과 개석사이 또는 개석 윗부분은 적석을 하고 있으며, 외형상 원형의 봉토처럼 보이는 적색~황토색으로 덮여 있다. 창원 덕천리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공간이용, 신분분화 등 당시의 생활상 연구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는 곳이다.
① 지석묘1호: 8m×6m 의 묘광을 3단으로 파고 4.5m 아래에 석실을 축조하였다. 석실에는 5매의 묘석을 덮었고, 그 위에 30~50cm 크기의 돌 800여개로 적석 하였다. 적석위에 다시 12매 (하 8매, 상 4매)의 개석을 2겹으로 덮고 묘광 어깨선까지 흙을 채웠다. 그리고 적색황토를 봉토처럼 50cm 정도의 높이로 덮은 후 그 귀에 지석을 노고 상석을 얹었다. 석실의 크기는 280×80cm, 깊이는 120cm이다. 바닥에는 전면에 판상석을 깔았고, 4벽은 판상 획석으로 평적 하였다. 장축방향은 남-북향이다.
② 지석묘2호: 6×3.5cm 크기의 묘광을 2단으로 파고 3m아래에 석실을 제조 하였다. 석실에는 4매의 개석을 덮었고, 그 위에 30~50cm 크기의 돌 1,000개로 적석 하여 묘광을 채웠다. 그리고 적색~황색토를 지표면보다 50cm 가량 높게 봉토처럼 덮은 후 그 정부에 상석을 기대 놓았다. 석실의 크기는 260×80cm, 깊이는 80cm이다. 바닥 전면에는 5~10cm 크기의 자갈돌을 깔았다. 장축 방향은 동-서향이다.
③ 지석묘5호: 적색~황색토로 직경 약6m, 높이 40cm정도 성토한 후 다시 3×1.6m 크기의 묘광을 2단으로 파고 그 내부에 소형 석곽을 축조하였다. 석곽 위에는 7매의 개석을 2겹으로 덮고 적석한 후 다시 적색토를 얇게 덮고 상석을 얹었다. 석곽의 크기는 125×50cm이며 길이는 50cm이다. 네 벽의 안쪽에는 벽과 나란하게 판석을 세웠다. 장축방향은 동-서향이다.
출처
- 이영문 2002, 『한국 지석묘 사회 연구』학연문화사
- 네이버 백과사전
사진출처
- 08춘계답사 (본인이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