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는 삶)
1. 서론
제자의 삶 책중 드리는 삶은 물질적 헌금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바울이 헌금을 이야기할 때 헌금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그러한 헌금의 목적을 통해 바른 헌금과 자세를 알아보고자 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유복하게 사는 것과 그리고 많은 물질을 소유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경제적 위기 가운데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바울은 하나님게서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물질로 돕는 일에 기쁨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가르친 것은 일시적인 처방일 뿐이다. 사회는 어느 곳에서든지 물질적 궁핍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바라는 자들이 있다. 돌볼 가족이 없는 사람이나 또는 질병이나 혹은 나이로 인해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노동할 수 있고 자기의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들은 더 궁핍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자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황봉환, “성경에서 캐낸 축복의 보화 - 물질의 소유, 사용 그리고 축복에 대한 성경의 원리와 적용을 중심으로-”, (대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강의안, 2009.), p. 137
그런 의미에서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헌금 모금은 50년대 중반에 중요한 활동 중의 하나였음에 틀림없다. 이 사실은 로마서 15:25-32과 고린도전서16:1-4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그는 소아시아는 물론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방 등지에서 곤궁에 처한 예루살렘의 모교회를 위해 매우 열성적으로 이 헌금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가 헌금을 권장하고, 실제로 헌금을 거두었던 것은 교회를 유지하거나 말씀 선포자를 부양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복음의 선포자였던 그 자신이 사도의 권위에 위협까지 당하면서 교회의 부양을 거절하고 스스로 일을 했기 때문이다. 박익수, 『바울의 서신들과 신학Ⅱ』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p. 414-415
2. 본론
2.1. 바울의 헌금신학
바울은 고린도후서 8:1-6에서 마케도니아 지방의 교회들을 예로 들면서 그들이 극심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많은 헌금을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이럴 경우 헌금은 자신을 먼저 주께 바쳤다는 헌신이 전제된다.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한 헌금은 믿는 자들에게 베풀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합당한 응답이라고 한다. Ibid., p. 43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8:9)
그러므로 헌금에 참여함은 첫째, 다른 사람을 위해서 스스로 가난해지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된다. 둘째, 바울은 헌금을 유대인의 영적 빚에 대한 이방인들의 물질적 상환으로 이해함으로써 유대인들의 우선성을 인정한다. 셋째, 그는 ‘공평’이라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필요한 만큼 다 똑같이 만나를 먹었던 것처럼, 넉넉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궁핍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여유 있는 교회와 형편이 어려운 교회 사이의 “섬김”과 “봉사”의 원칙을 제시한다. Ibid., p. 439.
바울은 헌금을 성전세와 같은 것으로 제도화하지 않고, 필요할 때 교회에 그 필요성을 설득하면서 모금하였다. 그는 그때마다 애 헌금을 해야 하는가, 낼 때에는 어떤 심정으로 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을 위해 이방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에게 영적 빚을 졌기 때문에 그 대가로 물질적 헌금을 해야 한다든지, 공평의 원칙에 근거하여 지금 낼 수 있는 사람은 마지못해 하지 말고 축복을 받은 사람의 행위로서, 복을 받은 사람의 행위로서 너그러움을 보이라든지, “모금”, “호의”, “섬기”, “선물” 등의 다양한 명칭을 붙여서 그것이 세금과 같은 재정적 의무 이상의 것임을 강조하고, 또한 헌금은 선교 행위와 그 고난에 동참하는 행위임을 말한다. 그는 헌금의 많고 적음보다는 하나님의 선교 사업과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면서 자신들의 마음을 주께 바치듯 헌금하기를 권장한다. 그러나 그는 결코 얼마나, 어떻게 헌금하며, 혹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Ibid., p. 439,
헌금은 법적 의무러서 실행된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부유한 이방교회들의 자발적인 봉사였으며, 예루살렘 모교회에 대한 감사의 행동이었고 양분화된 교회가 헌금을 통해 결속을 다지는 구체적인 행동이었다. 이렇게 볼 때, 자발적인 자선 행위는 이방 그리스도 교회의 자의식을 보여주며, 동시에 이방 그리스도 교회의 중요성이 점차 증대되어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은 또한 바울의 교회 편에서 독립을 과시한 행위였고, 바울 개인적으로도 그 자신의 사도직과 복음을 공인받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Ibid., p. 439-440.
바울은 헌금의 방법을 있는 대로 각자 형편에 맞게 하여야 하는 것이며, 진정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자원하는 마음 자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는 한편, 헌금 모금의 실제적인 당위성을 언급하고 그 이행을 독려하면서도 다른 한편, 헌금은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은혜와 관련된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헌금 모금이 사회적 맥락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그 근본 정신은 신학적인 데 있음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바울에게서 헌금은 종교적인 데 뿌리를 두기는 하나 사회적인 맥락에서 표출된 것이며, 이미 받은 은혜를 사랑의 공동체가 서로 나누어 공평케 되는 것이다. Ibid., p.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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