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새로운 것도 언젠가는 전통적 이게 된다 내게 고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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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모든 새로운 것도 언젠가는 전통적 이게 된다 내게 고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모든 새로운 것도 언젠가는 전통적이게 된다
-내게 고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배움을 얻는 많은 곳에서 고전의 중요성에 대해 들어왔다. 고전이 중요하다는 말은 수없이 많이 들어봤지만 ‘왜’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드물다. 왜 고전이 중요할까? 나는 이에 대해 생각해보며 고전이란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도 했고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였다. 가장 먼저 고전에 대해서 들었던 생각은, 고전은 우리 삶의 지나온 길이라는 것이었다.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든 아니든 모든 고전은 우리의 과거이며 어떤 측면에서 볼 때엔 ‘역사’라고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이나 문학, 미술 등 여러 가지 분야를 막론하고 고전은 우리가 지나온 흔적이다. 우리는 지나온 흔적의 발자취를 남기며 살아왔다. 과거는 곧 우리들 자신이다(이것이 현재와 미래를 등한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뒤에 또다른 곁가지가 떠올랐다. ‘역사’라는 것은 결국 선택된 기록이다.
애초에 기록을 하게 된 계기와 의도, 기록자가 텍스트를 향해 갖고 있는 태도와 생각에 따라서도 내용은 달라진다. 그리고 애초 계획과 관계없이 후에 텍스트를 두고 벌이는 논쟁에 따라서 남겨질 것인지 삭제될 것인지가 결정되기도 한다. 어떠한 역사도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 없다. 고전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역사와 기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뜬금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고전은 역사라는 시간성과 선택이라는 주관성이 함께 교차하면서 만들어진 흔적이다.
고전은, 객관적인 시간의 지표를 정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이 합의하는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선택되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검증된 것이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고전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기까지는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동시대의 훌륭하고 탁월한 작품을 논할 때 그것을 고전이라 부르지 않는다.
당장에 최고의 작품이라고 불릴지라도 시간이라는 잣대가 그것을 명작으로 가려내기 전에는 고전이 될 수 없다. 반대로 당시에는 명작이라고 불리지 못했던 작품이라도 시간이 흐른 뒤에 인정받는 것들이 있다. 이 때문에 섣불리 고전에 대해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라는 지표는 고전에 있어서 중요하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고전은 계속해서 회자된다. 지금 우리가 명작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에서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지금의 명작들은 시대적으로 너무 가까이 있다. 멀리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기에 그것들은 고전이 되지 못한다. 고전은 끊임없이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힘을 지녀야 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를 수 있는 광대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고전은 많은 것들을 담아낼 수 있어야한다는 사명을 띤다.
과거와 현재는 다르지 않고 미래도 결국 과거가 된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고전이 무엇인가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은 ‘국외자들’이다. 영화의 많은 씬 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오딜’과 ‘아르튀르’, ‘프란츠’가 영어수업을 듣는 장면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전통적인 게 현대적인 것이에요. 위대한 시인 엘리어트 가 말한 것처럼.”
“오딜, 엘리어트가 뭐라고 했지?”
“모든 새로운 것도 언젠가는 전통적이게 된다.” 장-뤽 고다르, 영화 국외자들 中에서
이 부분은 정확히 말하자면 시인 T.S 엘리엇의 말을 고다르가 영화에 인용한 것이다. 고다르는 엘리엇이 한 말을 자신의 영화에 직접 인용했다. 내게 있어서 고전은 여러 가지로 정의될 수 있지만 가장 강렬하게 와 닿은 것은 바로 위에 인용한 대화내용이다. 결국 모든 새로운 것이 언젠가는 전통적인 것이 된다는 생각은 고전에 대한 가장 간단하고 강렬한 정의가 아닌가. 이것은 극명한 사실이다.
정말 새로운 것(현재이자 미래)들은 모두 시간이라는 구멍을 통해 과거라는 지하로 흘러들어간다. 모든 생명이 태어나고(새로운 것) 죽는 것(긍정적 의미로서의 전통적인 것)을 피해갈 수 없는 것과 같이 자명한 사실이다. 이 세계에서 시간이라는 길을 비껴갈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의 삶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이유이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기에 철학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가장 뜨겁게, 지속적으로 사유되는 것이 ‘시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많은 작품들이 ‘오마주’를 담고 있다. 오마주는 프랑스어로 ‘감사, 경의, 존경’을 뜻하는 말로 영화에서는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의 업적과 재능에 대한 일종의 경배를 뜻한다. 때로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자신이 존경했던 영화감독에 대한 일종의 헌사로서 특정한 장면을 모방한다. 영화사전, 2004.9.30, propaganda
T.S 엘리엇의 말을 작품에 인용했던 고다르의 ‘국외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국외자들을 ‘오마주’했던 작품 중 잘 알려진 것은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과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이다. 나는 몽상가들과 아비정전 모두 국외자들을 보기 전에 보았었다. 국외자들에서 익숙한 두 장면(아르튀르, 프란츠, 오딜이 미술관을 달리는 장면과 발 없는 새의 이야기)를 보고나서 참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두 감독(베르톨루치와 왕가위 감독)이 영화 속에 오마주한 장면을 넣었다는 것은 고다르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두 감독에게 있어서 고다르는 살아있는 고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고다르또한 다른 감독을 오마주한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그 또한 어떤 고전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국외자들에서 아르튀르와 프란츠는 각각 랭보와 카프카의 이름을 딴 것이니 이것도 작가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는 꼭 ‘누군가’ 혹은 ‘무엇’에게서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독단적으로 완전하게 혼자인 것은 없다. 고전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고전과 관련한 ‘우리’는 과거를 살아온 우리이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이며 미래를 살아갈 우리이다. 고전은 언제나 우리와 떨어질 수 없다. 시간이라는 바람에 의해 몇몇은 깎여나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은 중요하며 고전의 역사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