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회 연구 43을 둘러싼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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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4.3을 둘러싼 풍경들
4.3 때문에 도처에서 시끄럽다. 최근 많은 현장에서 ‘4.3’이 거론되고 있다. 대표로 강정마을 현장에서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주민, 활동가들은 해군기지 건설을 두고 ‘제2의 4.3’이라고 부른다. 이에 대한 주요 근거는 평화적으로 건설돼야 할 해군기지가 국가폭력과 인권유린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4.3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육지경찰이 제주도에 투입된 사실도 해군기지 건설을 ‘제2의 4.3’으로 부르게 한 이유가 되고 있다.
다음으로 주로 4.3이 많이 거론되는 현장은 ‘선거운동’이다. 최근 새누리당이 ‘4.3’을 폭동으로 규정한 이영조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전략공천하면서 4.3단체를 비롯한 4.3유족들이 단단히 화가났다. 이참에 제주에서 한 석이라도 내심 당선되기를 바랐던 새누리당 제주도당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모양이다.
실제로 4월 총선 때마다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 후보들은 전체적으로 지지율이 5% 빠진다. 4.3 현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수세력 결집을 위해 4.3의 아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지역을 과감히 배제하는 정책인물공천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역시 이영조 전 위원장을 공천하면서 새누리당은 보수세력을 모으는 대신, 제주지역은 과감히 배제했다. 새누리당 제주도당은 중앙당과 도민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입장을 발표 못하고, 속만 끓고 있다. 올해 선거도 새누리당에게는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4.3과 직접 관련된 진영은 어떨까. 4.3 평화재단 직원 선발을 두고 오랜시간 잡음이 일었고, 이사장 선임 과정에서도 역시 몸살을 앓았다. 4.3이 정치적인 입장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지만, 선거에 도움을 준 인사들이 주요 요직에 앉았다는 비판이 도민사회에서 촉발됐다.
또 제주4.3평화재단이 이사진을 확정하면서 경찰 출신 보수우익인사를 포함해 큰 논란을 빚었다. 해당 보수우익단체는 그간 제주4·3을 무장폭동으로 매도하며 끊임없는 논란을 키워왔다. 이에 대해 재단 측에서는 4·3의 정신은 화해와 상생으로 우익인사를 포함시킨 건 화해의 뜻을 담았다고 해명했다. 이어 노무현 대통령 사과 후 적극적인 4·3해결을 기대했으나 MB정부 4년간 이뤄진 게 없어 좌·우 구분없이 함께 풀자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의회에서도 논란이 커지자 해당 보수우익 인사는 스스로 이사직을 사퇴하며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제주4·3평화재단의 ‘4·3추가진상조사단’ 구성문제도 시끄러웠다. 객관적 검증 없이 재단 입맛에 맞는 인력을 구성해 ‘밀실인사’를 조장한다는 주장과 함께 재단 이사장의 인사개입 의혹이 제기됐다. 물론 특정 단체의 성명을 통해 제기된 문제지만, 추가진상조사의 중요성과 결과의 공신력 등이 굉장한 무게감을 갖는 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문제 또한 앞으로 논란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4.3과 관련한 개인적인 경험도 있다. 최근 문화예술재단의 원고청탁으로 제주출신 오멸 감독이 연출하는 4.3 장편영화 의 촬영현장을 방문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극히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라, 제작이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감독을 비롯해 스텝, 배우진들이 굉장한 의지를 갖고 영화를 완성하고자 하는 열망은 가득했다.
은 고 김경률 감독의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을 모티프로 했다. 4.3사건 당시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큰넓궤 동굴로 피해있던 마을주민의 실화를 근거로 했다. 이 영화는 흑백으로 만들어진다. 베를린 국제영화제 출품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오멸 감독의 전략이 궁금했다. 역사적인 재현규모가 엄청난 제주4.3사건을 어떻게 영화 속에서 드러낼 수 있을까. 과연 무엇을 드러낼까. 또 어떻게 드러낼까 등. 스텝 중 한명은 4.3의 특정사건을 재현하는데 주력하진 않을 거라고 얘기했다. 서사보다 이미지를 창조하는데 더 신경을 쓸 것이고, 일상에서 소소하게 벌어진 소위 ‘자파리(쓸데없는 짓거리)’를 모으고 보여주는 것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영화 제목(물론 가제목이긴 하지만) 에서 알 수 있듯 영화에서는 집집마다 키웠던 ‘돼지’가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주체로 등장할 예정이다. 제목 은 돼지 멱따는 소리에서 따온 것이다. 오 감독이 원래 생각했던 제목은 였다고 한다. 군벌을 피해 주민들이 산으로 도망가면서도, 돼지에게 밥을 주기 위해 몰래 집으로 돌아가는 슬프지만 해학적인 장면 등이 영화에서 등장한다. 결국 주민이나 군벌이나 모두 피해자였단 얘기를 영화를 통해서 할 생각인 것 같다.
재밌는 것은 이 영화에 대해 보수나 진보나 모두 시큰둥한다는 점이다. 보수진영에서는 이 영화 시나리오를 읽고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것 아니냐”란 말을 했다고 한다. 진보진영에서는 관심이 시들해진 것은 물론이고, 몇 4.3 유족들은 “왜 자신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영화를 만드느냐”는 당황스런 이야기까지 전했다고 한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제주사회에서는 4.3에 대한 각기 다른 ‘담론의 정치’를 펴고 있다. 그것도 권귀숙이 이야기하는 바대로 ‘집단기억’을 근거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 담론의 정치라는 것이 필요할때마다 차용되는 것이어서 4.3에 대한 대중적 전파, 계승을 더 어렵게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4.3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부딪히는 공론장이 형성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나, 지금 벌어지는 상황들은 공론장에서 벌어지는 논쟁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이득을 노리기 위해 차용된 4.3의 담론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는 인상이 든다.
고성만이 제시한 것처럼 합의된 담론으로 발전한 ‘화해상생론’이 과연 현 시대에서 유효한 4.3 담론인지도 궁금하다. 4.3에 대한 진상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해상생론으로 모든 문제를 봉합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4.3평화재단의 보수우익인사 채용과 이영조 전 위원장의 전략공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화해상생의 입장에서 고스란히 인정하고 받아들일만한 문제일까.
또 알박스로 대표되는 ‘집단기억론’으로 과연 제주4.3의 기억의 재현과 재구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사건의 규모와 특수성을 고려해 4.3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독자적인 이론도 구축돼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도 좌우와 상관없는 진상규명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