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1860년대의 위기 의식이 고조된 구한말의 상황에서 철종 11년(1860)에 수운 최제우에 의해 창도된 동학은 당시 개화·위정척사사상과 함께 그 전후시기를 통하여 형성된 민족구원의 종교였다. 이때 동학의 태동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며,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상황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이른바 서세 동점적인 위기의식에 의한 거센 도전과 응전 속에서 나온 것이다.
동학은 19세기 후반기의 우리나라 정치사회경제문화적 제반의 모순, 비리, 부정을 과감히 개혁 변혁시켜 지상의 복락과 인류 평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투철한 민족관, 국가관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과정에서 발생하였던 것이다.
이후 동학은 보국 안민의식과 시천주 인내천의 사상과 교리를 두 가지 큰 산맥으로 한 반봉건적 반침략적 성격이 짙은 민중 기반적 구원의 종교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1905년 제3대 교조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개칭되었다.
손병희는 동학 즉 천도교의 제 3대 교주로서 1894년 갑오 동학혁명으로부터 1922년 별세할 때까지 62세의 평생 동안 동학사에 굵직한 업적을 남긴 인물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동학 내지 동학운동이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는 관점에서 볼 때 손병희와 근대화의 관계는 밀접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손병희는 서자 출신으로 근대화의 거봉으로 꼽히게 되기에 이르렀는데 그 사이의 그의 사상의 변화는 곧 한국 근대화의 방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본론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의암 손병희에 대해 알아보고, 천도교의 사상적 원류인 동학을 살펴봄으로써 손병희의 정치사상(인내천-人乃天, 삼전론-三戰論, 갑진개화운동-甲辰開化運動, 정교분리-政敎分離)과 천도교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그리고 그의 사상 가운데에서 현대 한국에 계승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2. 본론
1) 손병희의 생애와 업적: 천도교 지도자이며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밀양. 초명은 응구(應九)·규동(圭東). 호는 소소거사(笑笑居士), 도호(道號)는 의암(義菴)이다.
(동학입도- 동학의 재건과 도통의 전수- 근대화론의 수용- 일본에서의 활동과 갑진개혁운동 -
천도교 창건과 일진회와의 분립- 근대교육사업과 출판사업- 31운동)
2) 동학사상: 천도교의 사상적 원류이자 토대
-창립배경: 19세기 중엽에 우리나라에서 동학이 태동된 이유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주요 역 사적 배경이 있다. 먼저 18세기 이후 변질된 조선 왕조양반 사회의 제반 정치적 모순, 둘째 국 가에의 납세제도인 삼정 문란 셋째 19세기 이후 서세도점의 위기 속에서 국가보위의식의 팽배 넷째 전통적인 유교불교도교 등의 여러 가지 폐단에 따른 지도이념의 퇴색 다섯째 서학의 도 전을 민족적 주체의식으로 대응하려는 자세 여섯째 실학에서의 현실비판 및 개혁사상에 영향 받은 피지배민중의 의식 수준의 향상과 높아진 자가가도 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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