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를 위한 뉴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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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에이지를 위한 뉴 저널리즘
언론의 역사는 뉴저널리즘에 의해 바뀌어 왔다. 19세기 선정적인 일요판, 옐로우 저널리즘그, 그리고 1960년대 트루만 카포테, 톰 울프, 그리고 헌터 톰슨 등에 의한 뉴 저널리즘 등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독자들의 요구에 따른 변화였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뉴 저널리즘이 일어날 때는 당시 등장한 새로운 기술이 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이는 빅토리안 시대에서 20세기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레이아웃과 디자인의 변화
일간지의 배달 부수는 1930년대 정점에 달했다. 석간 신문의 경우는 첫 페이지의 제목이 얼마나 눈길을 끄느냐가 중요했다. 회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야 했기 때문이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석간 신문이 쓰던 방법이 조간 신문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자극적인 뉴스, 자극적인 신문 디자인이 성행했다. 부수를 늘리고 매출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게 필요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경기 침체와 신문들간의 경쟁, 그리고 인쇄 기술의 발전이었다.
1893년의 금융 위기는 미국의 유례 없는 경제 성장 직후에 나타났다. 이는 과도한 철도 건설 투자 때문에 빚어졌다. 애치슨, 토페카, 산타페 등 많은 유명 철도 회사들이 파산했다. 1만5000개 이상의 회사들이 도산했고, 이에 따라 실업자가 늘어났다. 불황은 신문의 가격과 광고비가 낮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뉴욕 월드’의 오너 조셉 퓰리처와 ‘뉴욕 저널’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뉴욕 독자들을 잡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둘 다 눈길 끄는 헤드라인 달기에 몰두했고, 두 사람의 전쟁은 엘로우 저널리즘이라는 선정적인 스타일의 신문을 만들어 냈다. 그 이름은 퓰리처 ‘뉴욕 월드’의 정기 컬러 만화인 ‘호간의 앨리’ 주인공이 노란색 나이트 셔츠를 입고 있는데서 유래했다.
미국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 프랭크 루서 모트는 옐로우 저널리즘은 5가지 특생이 있다고 정의했다. 커다란 글자와 중요하지 않은 뉴스, 그림과 사진의 과도한 사용, 가짜 인터뷰나 비과학적이고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남발하는 미확인 정보, 올 컬러 선데이 부록에 대한 강조, 그리고 반체제 발전에 공감하는 내용 등이었다.
타블로이드는 특별히 소리 지르는 헤드라인을 많이 사용했다. 신문의 크기는 작아졌지만 신문의 페이지네이션은 늘어서 신문을 여러 섹션으로 나눴다. 스포츠, 돈, 여행 등 사람들의 관심에 따른 섹션이 생겼다.
저널리스트는 전문가인가
많은 저널리스트들은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갖는다. 언론의 업무는 정해진 패턴이 있다. 뉴스를 모으고, 인터뷰하고, 선택하고, 쓰거나 녹음하고, 에디팅한다. 저널리스트들은 객관적인 뉴스와 의견이 섞인 주관적인 뉴스를 구분힌다. 하지만 사실 객관과 주관을 명확시 구분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기술, 문화, 교육, 산업화, 정치 상황의 변화 등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과연 저널리스트를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까. 건축가, 엔지니어, 변호사 같은 전문 직업인들은 어딘가에 등록을 하거나 관련 면허를 취득하며 일정 정도의 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어딘가에 속해 있더라도 어느 특정한 쪽으로 치우지지 않는다. 저널리스트들이 추구하는 것도 이런 전문직업인들의 특성과 유사하다.
영국에서는 로열 차서가 1890년에 저널리스트 인스티튜트(IOJ)를 세웠다. 그 기관은 저널리스틱한 일을 하는 신사들로 이뤄져 있고, 직업적인 공통의 관심사들을 발전시키기 위해 설립됐다. 1934년 IOJ는 저널리스트 등록제를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