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영상의 연관성

 1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영상의 연관성-1
 2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영상의 연관성-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영상의 연관성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영상에 관한 연관성
데카르트의 관념과 실재에 관한 관계는 토대주의로 연관된다. 토대주의란 절대적으로 신뢰되는 기초적 믿음을 토대로 구성되는 실재에 대한 관념과의 관계에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로 존재한다. 토대주의로 구성되는 데카르트 자아의 존재는, 감각적 지식과 오성적 지식의 불확실성을 근거로 밀폐된 자아로 존재하게 된다. 이는 영상학에 있어서 영상의 운동감각과 아날로곤에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영상에서의 운동감각에 대한 지각은, 영상을 보는 수용자의 관념 속에서 새로운 운동의 형태를 조직하는 것이지 영상에서 재현된 운동의 재구축을 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된 형태가 현실의 움직임에 관한 ‘인상’을 주는 것이므로 대상의 현실성이 아니라 상의 현실적인 인상인 셈이다. 이는 데카르트의 관념과 실재에 정확히 반대되는 개념을 가진다. 영상의 실재를 보고 수용자들은 관념의 원인으로서의 실재를 찾기 보다는 수용자와 대상의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유사경험의 관계만을 인지하게 된다.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주장은 ‘절대적으로 신뢰되는’ 관념에 의한 실재의 정립이라는 측면에서 실재하는 대상이 밀폐된 자아 외부에 존재해야만 한다. 상(像)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원인이 될 수 없는 사물 즉, 상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이를 표상적 실재성과 형상적 실재성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이는 특정 관념이 그에 맞는 특정한 표상적 실재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 관념이 가지는 표상적 실재성과 적어도 동등한 형상적 실재성을 갖고 있는 원인이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영상에서는 실재성이 관념을 품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영상에서의 실재성은 관념에 의지하지 않는다. 실재하지 않는 운동적 아날로곤이 감정 아날로곤을 동반하면서 관념의 실재화가 아니라 실재의 관념을 재출현시키기 때문이다. 재현(represent)이 아니라 재출현(re-present)의 개념을 가지고 이유는 영상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상의 재구성이 아닌 상과 운동의 출현이 다른 시각선상에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영상에서의 관념과 실재의 관계는 디스쿠르적 측면에서도 서술이 가능하다. 특정한 행위에 의한, 특정한 나타남은 관념과 현실의 상호 활성화적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과의 현실적 관계를 전재로 하지만, 영상에서의 관계는 관념적 측면에서는 실재하지 않지만 형상적 측면에서 실존하는 허구적 재출현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야기 하는 생위와 듣는 행위를 포함하는 이해 그 자체로 파악된다.
이러한 측면으로 볼 때, 데카르트는 영상이라는 관념 자체를 가진 적이 없기 때문에 관념과 실재로 나누어지는 인식론적 입장으로는 영상의 재출현을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데카르트는 또한 밀폐된 자아 외적에 초월적인 존재가 실재하는 전재조건을 깔고 있다. 사유실체와 연장실체간의 이분화가 뚜렷하게 나타므로 실재의 부재, 관념만이 존재하는 상태의 영상적 특징과 배척되는 상태를 야기하게 된다. 이는 영상이 가지는 ‘형상적 실재성’에 의거하여 생각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실존)하고, 존재에 관한 생각(관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의심한 데카르트는 우리의 감각은 완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신체의 어떠한 감각이든 그것을 통하여 인식되어지는 감각적 사물의 존재와 그것에 관한 지식 역시 의심하였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감각이라 함은, 단연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는 화면(영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라 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의 시각을 통한 정보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 본적이 있을까?
영상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무지한 대중을 깨우치기 위함이나, 독재의 정당화를 위해서 영상을 이용했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영상을 통해서 평상시에는 변화하기 힘든 고정관념이 바뀌기도 하고, 절대 수긍하지 못했던 타인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게 될 수 있다. 그러한 영향력이 있는 영상을 아무런 의심 없이 수용한다면, 결국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개인의 주관이 사라져, 타인의 생각에 나의 의견 없이 침착될 수 있다. 그러한 무비판적 수용이 대중들을 얼마나 무지한 존재로 만들었는지는 우리의 과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데카르트처럼 영상을 통해서 받아들여지는 모든 지식을 의심해야 하는 것일까.
헤아릴 수도 없는 방대한 양의 지식을 모두 의심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정보의 참과 거짓을 구분하다가는 우리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지식에 대해 깊이 있는 고찰을 못한다 하더라도, 의식 있는 생각을 가지고, 의심을 가지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주관을 놓지 말고,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명제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문점을 던지라는 것이다. 물음이 없는 인생은 의미가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점점 더 복잡해져가는 이 시대에서 우리는 기계와, 컴퓨터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편히 살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지 눈에 들어오는 영상만으로 만족감을 느끼며, 단순히 눈을 즐겁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상을 대할 때에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만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곱씹고, 음미하며,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단순한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닌 의식을 가진 영상, 생각을 할 수 있는 영상을 접해야 할 것이며, 영상을 만드는 연출자 또한 그러한 영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