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는 익숙하면서도 쉽지 않은 개념이다. 이 말이 유래한 서양에서도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오늘날 시민사회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을 살펴보면 ‘시민의 자발성과 자율성에 기초하여 공익과 공공선을 추구하며 국가와 시장으로부터 구별되는 독립적인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즉, 시민사회는 우선 국가와 시장에 대비되는 제3의 영역을 뜻하며 이 영역은 국가와 시장으로부터 독립적인 동시에 국가와 시장에 대한 견제세력을 의미한다. 여기에서의 시민은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공공의 정책결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을 말한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현대적 의미의 시민사회 개념이 형성되기까지 서구의 시민사회가 어떻게 성립되어 왔는지 개념형성 과정과 철학적 기초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시민사회의 기원
시민사회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s)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의 무대인 폴리스는 ‘공공 생활의 모든 영역’을 의미하였다. 공공은 개인과 직계가족·가정을 뜻하는 ‘사적인 것’과 대비된다. 정치적 조직체(polity), 가치(종교), 시장은 폴리스 안에서 균형을 유지한다. 16세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피렌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이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폴리스는 ‘소키에타스 키빌리스’(societas civilis)로 표현됐다. 이것이 ‘시민사회’라는 말의 시작이었다. 고대 도시국가인 아테네 시민은 출생신분에 따라 부여된 정치적 결정권의 담당자를 말하였으나 실제로는 도시에 토지를 소유한 재산소유자를 일컫었다. 이런 제약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론에서 규정한 시민개념이 근세사회까지 영향을 끼쳐왔음을 뜻한다.
로마공화국의 시민도 일부계층 즉 귀족에 국한되어 있었고 농민, 노동자, 상인 등을 포함하는 평민계층은 로마시민의 자격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재산과 부를 축적하게 된 평민과 귀족간의 결합으로 새로운 귀족계급을 형성, 로마시민의 핵으로 등장하면서 평민도 시민이 되었다.
중세시대에 들어와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독재정치가 진행됨에 따라 시민사회는 위축, 시민 개념은 발전이 지체되었다. 중세시대 봉건영주의 통제에 저항하는 상인 및 수공업자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스스로 보호하기 위하여 세속적인 권력과 교회의 권위에 대항하여 싸웠다. 이 때 나타난 것이 ‘길드’인데 길드는 중세에서 근대로 오면서 시민사회가 형성되기까지 도시를 중심으로 한 시민계층의 성장과정에서 하나의 시민적 자주권을 확보하게 되는 역사적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중세 후기에 시민은 정치적 신분의 지위를 얻게 되었는데 절대주의적 군주지배체제라는 국가권력의 중앙 집중화에 이르러서는 시민공동체와 함께 정치적행정적 참여권은 상실되고 말았다. 여전히 신분과 재산소유 정도에 따른 구별이 일정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시민의 개념규정은 17세기에 하나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시민세력의 등장은 국가권력의 절대군주에 의한 독점화로 말미암아 그의 정치적 의미를 박탈당한 부르주아에게 국가권력의 통제와 행사에 참여토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민은 역시 재산소유 시민에 한정되었다.
영국에서는 시민계층이 자주적 힘으로 통일되기까지는 17세기와 비슷한 이해관심을 추구하는 토지귀족과의 밀접한 결합이 필요했고 그 정치적 절정이 명예혁명으로 이르게 된다. 영국의 혁명은 법률을 만들어 청교도적인 근검, 검소, 절약의 정신을 실천에 옮기고자 했으며, 혁명 주도세력의 사상과 활동은 민주주의 발전과 시민사회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2. 시민사회의 개념
시민사회에 대한 논의는 절대주의 왕정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기반한 해방이라는 서구 정치사상의 흐름 속에서 잉태된 후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으나 이를 사상적 흐름으로 아래와 같이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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