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서구 탐구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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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울시 강서구 탐구조사보고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강서구의 역사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강서구의 최초의 지명이 고구려의 “제차파의현”으로 기록되어있다. 그 신라 경덕왕 때는 “공암현”으로 바뀌었다가 고려 충선왕 때 이르러 “양천현”으로 개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명은 한 결같이 현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강변동굴인 “허가바위”에서 유래하였음을 알려준다. “제차파의(제차=제의처, 파의=바위 라는 뜻의 이두문자임)”는 제사를 지내는 바위 즉 “제의처”였음을 암시해 주고 있으며. “공암”이란 단어역시 “구멍바위”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 후 1914년 일제가 지방제도 개편을 단행함으로써 양천현이 폐지되고, 양동면과 양서면으로 나뉘어져 김포군에 통합되고 말았다. 1963년 1월 1일 김포군 양동면, 양서면 전역은 서울시의 대규모 확장에 의해 영등포구로 편입되었고, 그 후 급격한 인구증가에 따라 1977년9월1일에 강서구로 독립하였으며, 목동지역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됨으로써 1988년 1월1일부로 신정동·신월동·목동이 강서구에서 떨어져 나가 양천구로 신설 분구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2.강서구의 각 동별 지명의 유래
염창동(鹽倉洞)
조선시대에 소금보관창고(鹽倉)가 있었기에 염창동이 되었다.
등촌동(登村洞)
등촌중학교 앞에 있던 등촌리가 오늘날 등촌동이 되었다. (옛날 등촌리는 현재 등촌1동, 백석리는 등촌2동이 되었음)
화곡동(禾谷洞)
땅이 기름져 골짜기 사이마다 벼가 잘 되므로 벼가 익어가는 골짜기 마을이란 뜻의 화곡동이라고 불리워졌다. (옛날 초록동은 화곡본동, 곰달래길의 시원지는 화곡1동, 봉제산 남쪽줄기 아래는 화곡2동, 김촌마을은 화곡3동, 능꼴마을은 화곡4동, 박장마을은 화곡5동, 역말마을은 화곡6동, 새까지 마을은 화곡7동, 더부리 마을은 화곡8동이 되었음)
가양동(加陽洞)
조선조 양천현의 행정중심지로서 양천현아가 있었고 또 양천향교가 지금도 남아있다. 우리구에서 문화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으며 우리구 역사의 중심지이다. (양천현아와 향교가 있던 곳은 가양1동, 탑산 아래 공암리는 가양2동, 줄웅덩이가 있던 늪지는 가양3동이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