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암과 전등사
신라 선덕여왕 13년, 자장율사는 오세암을 창건하였다. 처음에 그곳은 관음보살의 진실을 친견한 자장율사가 관음보살이 항상 머무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관음암이라고 칭하였고 관음암이 현재의 오세암이다. 관음암이 오세암으로 이름이 바뀌기 까지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인조 21년, 1643년에 일어난 일로 5세 어린아이에 관한 유명한 관음영험 설화이다.
관음암에서 수행 중이던 설정스님은 형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고아가 된 조카 중 어린 5세의 아이를 암자로 데려와 기르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겨울을 나야 하기 때문에 스님은 마을로 내려가 월동준비를 위한 물건들을 사러 장터에 가게 되었다. 관음암에서 장터까지의 거리는 빠른 걸음으로 다녀와도 이틀은 걸리는 먼 길이었다. 이틀동안 혼자 지낼 아이를 위해서 스님은 넉넉한 양의 밥과 반찬을 만들어 놓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스님은 길을 떠나면서 아이에게 법당에 있는 관음보살을 가리키면서 관음보살을 찾으면 관음보살이 아이를 보살펴 줄 거라고 말했다.
5살의 어린 조카에게 신신당부를 한 후 스님은 겨울준비를 위하여 장에서 이것저것을 구매한 후 다른 절에서 하루를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밤사이 폭설이 내려 스님은 아이가 있는 관음암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몇일을 더 지체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은 점점 심하게 내리고 스님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해 무리해서 아이를 찾아 관음암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스님은 얼마 가지 못하고 다쳐 계속 절에 머물게 되었다. 스님은 절에 머물면서 항상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며 아이를 걱정했다. 스님은 눈이 다 녹을 때까지 절에 머물게 되었고 시간은 계속 흘러 어느새 봄이 되었다. 스님은 서둘러 짐을 챙겨서 관음암으로 향했다.
관음암에 도착한 스님은 목탁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아이가 관음보살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고 아이가 죽었을것이라고 생각한 스님은 놀라 관음암으로 들어갔다. 암자 안에는 아이가 목탁을 치며 관음보살을 두드리고 있었고 방안에는 훈훈한 기운가 향기가 맴돌고 있었따. 아이가 살아있다는것에 기쁨과 반가움을 느낀 스님은 아이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고 아이는 관음보살 그림을 가리키며 어머니가 찾아와 밥도주고 놀아주고 재워주었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환한 흰 옷을 걸친 여인이 관음봉으로부터 내려와 동자의 머리를 만지면서 성불의 기별을 주고는 한 마리 푸른 새로 변하여 창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놀란 스님은 마음을 가다듬고 부처님 전에 큰 절을 올리고 아이를 안아 보려 했지만 아이는 품에 안기지도 않은 채 그대로 사그라져 승천을 하였다.
시간이 흘러 살펴보니 법당 경상에 놓여 있던 책장이 스님이 집을 비운 딱 그만큼의 날짜만큼 찢겨져 나가 있었다고 한다.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종이 한 장으로 그날 하루를 지내게 되었음으로 추정된다. 그동안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알게 된 설정 스님은 다섯 살 어린 조카가 맑고 밝은 마음으로 삼촌인 스님이 시키는 대로 무념무상의 관세음보살을 계속하자 관음보살이 감응하고 그 가피로 영생불멸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깨달았다고 한다.
이 설화는 이미 많은 문학작품으로 재 탄생 되었다. 애니메이션도 있고 소설 그리고 만화책으로도 나타나 있다. 평소 오세암 작품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택하였다. 작가 정채봉은 설악산 만경대 오세동자의 전설을 오세암으로 묶어냈다. 그는 이 전설을 아이들만 읽을 수 있는 동화에 그치지 않고 어른들도 감동을 받을 수 있게 이야기로 구성해내었다. 즉 설악산의 아름다운 풍경, 천진한 소년과 스님의 우정, 소년과 거대한 자연의 교감을 정채봉 특유의 서정적이고 섬세한 필치로 펼쳐 보이고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전설을 복원해서 이야기로 재구성해낼 때 나타날 수 있는 독자의 제한성을 잘 극복한 작품으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불교 사상을 수직적 축으로, 동심의 공간을 수평적 축으로 하여 유기적 조직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다. 특히 내설악의 오세암에 얽힌 설화를 근간으로, 아득하여 잡히지 않는 불교 사상을 어렵지 않게 동화라는 장르에 수용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바로 동화라는 장르적 특수성으로 인해 보다 효과적인 감응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설화의 배경이 된 관음암을 찾아가 보려고 하였지만 차도 없고 가는 교통편도 좋지 않아 다른 절을 선택하게 되었다. 때마침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하고 있는 전등사에 가게 되었다. 전등사는 강화도에 있는 사찰이다. 전등사는 나녀상으로 유명한데 나녀상 이야기는 이렇다. 고구려 소수림 왕 때 아도화상이 잠시 머물며 지은 절인 진종사는 조선 광해군 시절에 절의 대부분이 타버려서 새로 짓게 되었다고 한다. 대웅전의 공사를 맡은 도편수가 근처 주막 주모와 사랑에 빠져서 주모에게 자신의 돈을 모두 주었다. 공사가 끝나가자 주모는 도편수의 돈을 모두 가지고 도망을 갔고 실의에 빠진 도편수는 주모가 평생을 뉘우치며 살기를 바라며 대웅전 처마 밑에 발가벗은 여성의 상인 나녀상을 새겨놓았다고 한다.
전등사에는 헌종 때 안에 사고를 만들어 책을 보관 했었다는데 병인양요를 겪으면서 외규장각 등 많은 서책들이 프랑스 군에게 약탈 당했다. 하지만 다행이도 조선왕조실록은 아무런 피해 없이 잘 보관되었다고 한다.
전등사에서는 매년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화려한 등들을 가득 달아놓음으로써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한다. 아버지가 불교 신자이셔서 전등사에는 나와 동생의 이름으로 된 등이 있다. 수능을 준비 할 때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족들과 함께 절에 가서 하루 동안 절도 하고 기도도 하면서 쉬는 날을 보내곤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절에 가서 절을 하고, 점심으로 공양을 먹은 뒤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 때가 되면 산에서 내려와 근처 맛집에 들려 맛있는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저녁 메뉴는 주로 등갈비나 스테이크가 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하느라 스트레스가 잔뜩 쌓였을 나에게 정말 큰 휴식과 안식이 되었던 것 같다. 스님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 와는 다르게 조금 더 조신해지고 나긋나긋하게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번 부처님 오신 날에 간 전등사는 수능이 끝난 이후 첫 방문이었다. 매년 느끼는 것이지만 부처님 오신 날의 분주한 절의 모습은 평소와는 사뭇 다르다. 평소에는 바람만 움직이는 것 같은 고요함이 맴돌지만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절은 엄청난 인파로 북적거린다. 올해도 많은 인파에 절 답지 않은 절을 경험하고 왔다. 아침 일찍 갔음에도 절은 이미 사람들도 북적였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왠지 내가 원한 절의 느낌은 아니라 실망하고 있었다. 점심 공양이 되자 사람들은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갔고 주방에서는 손이 모자라 평소 친하던 스님의 부탁으로 주방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1500명 분의 공양을 준비했다고 하시던데 금방 음식이 동나버려 그냥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았다.
밤이 되자 전등사에는 연인들이 꽤 보였다. 낮에는 가족들이 많아서 못 느꼈나보다. 밤이되자 가족들은 집으로 돌아간 듯 연인들이 남아 밝게 빛나는 등을 보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근처에 건물이 없어서인지 새까만 밤하늘에 등이 빛나는 모습을 보자 굉장히 아름다웠다. 밤늦도록 등을 구경하다가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 어머니와 과일을 먹는데 괜시리 수능을 준비 할 때가 생각나 웃음이 났다. 과일을 먹다가 얘기가 길어져 치킨집에서 치킨과 맥주를 시켜 2시가 넘도록 학생때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와는 평소에도 얘기를 자주 하지만 아버지와는 자주 얘기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기숙사 생활을 하느라 집에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집에 갈 때마다 부모님과 함께 맥주한잔 하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 같아 좋았다. 절 핑계로 한 나들이였지만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즐길 수 있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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