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신자를 초신자로 안착시키고 난후 그들을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시켜야 하며, 이는 새로운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성경적인 해답으로서 교회의 체질을 바꾸고 그 이미지를 갱신할 수 있는 중요한 목회 전략임을 인정한다. 이제 이러한 목표를 위해 목회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평신도를 제자도에 입각한 예수의 제자로 만들 수 있을까? 제자 훈련의 목표는 바로 이 질문에 대답하는 실제적인 목회 방법일 것이다.
1.제자 훈련 사역에 자리잡고 있는 오해들 옥한흠, 「평신도를 깨운다」 (서울: 두란노서원, 1984).
올바른 제자 훈련을 실행하려면 무엇보다 종종 듣게 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오해를 먼저 풀어내야 할 것이다.
첫째로 제자 훈련은 성경 공부다라는 오해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성경 공부만 시킨 제자 훈련이 한국 교회의 침체를 가지고 왔다. 그동안 제자 훈련은 한국 교회 성장에 큰 몫을 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 교회의 성장이 현 수준에서 멈추고 정체 현상을 보이게 된 원인은 제자화 훈련에 있다고 본다. 제자 훈련은 듣고 말하는 훈련으로서 문자 그대로 제자를 만드는 훈련이다. 제자 훈련의 결과 한국 교회 교인들은 듣기를 매우 좋아하고 말도 잘하는 교인이 되었다. 그러나 훈련의 긍정적인 영향이 많이 있는 반면, 배우는 것 자체로 만족하는 교인들이 많아진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값싼 제자 훈련을 한 교회들이 없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소지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개중에는 심하게 말해, 성경 공부라고 하기 조차 민망한 제자 훈련도 있었다. 그러므로 제자 훈련을 한물간 성경 공부의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해도 달리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오해를 하는 것과 어떤 결정적인 단언을 내리는 것과는 구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제자 훈련은 성경 공부가 아니다. 성경 공부는 제자 훈련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고, 제자 훈련이 한국 교회의 침체를 가지고 온 것도 아니다. 제자 훈련과 오늘의 침체를 연관심킬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제자 훈련에 무관심한 지도자와 부담스러운 훈련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믿은 좋은 사람인 체 행세한 다수의 평신도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릴지 모른다.
둘째로, 제자 훈련을 전도와 가르침에 유능한 평신도 기능인을 만들어 내는 코스처럼 생각하는 오해다. 전도 잘하고, 말씀 잘 가르치고 열심히 봉사하는 유능한 평신도를 만드는 것이 제자 훈련의 목적이라면 이 훈련은 얼마 안가 변질되고 말 것이다. 실익을 따르는 제자 훈련은 그 순수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법이다. 물론 제자 만드는 궁극적인 목적에는 세상에서 예수의 증인이 되고, 교회 안에서 다른 형제를 잘 섬기는 능력 있는 살감이 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제자됨이 이와 같은 기능적인 면에만 한정된 것처럼 좁게 해석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자 훈련은 예수를 닮고 그를 따르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는 데 그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우리는 평신도의 뇌리에서 하루 종일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예수님이 제시한 표준에 따라 나의 신앙 인격이 성숙한 단계를 지향하고 있는가? 선교적인 책임과 동시에 사회적인 책임을 나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만일 우리가 믿음은 좋은데 인격이 바뀌지 않는 사람을 예수의 제자라고 인정한다면 그것은 제자됨을 모독하는 일이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교회 생활과 사회 생활이 각각 따로 노는 이중적인 사람을 놓고 제자 훈련이라는 형식적인 과정을 마쳤다는 이유로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고 인정한다면 그것은 교회의 세속화를 촉진시키는 화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제자 훈련을 받은 다음 전도에 열심을 내지만,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일이나 이웃을 돌보는 일에는 꽁무니를 잘 빼는 평신도를 많이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제자 훈련이 본질에서 크게 빗나갔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제자 훈련을 하지 않도록 하자. 어떻게 보면 정직한 제자 훈련은 손익 계산이 잘 맞아 떨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손해를 보아도 그만둘 수 없는 것이 제자 훈련이다. 쓸데없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이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자리에서 특별히 지적하고 싶은 사실이 하나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복음주의적인 노선을 따르는 많은 교회에서는 제자 훈련을 민족 복음화 혹은 세계 복음화라는 특 속에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대단히 높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 훈련은 오로지 전도자를 양성하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수단인 것처럼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복음을 큰 소리로 외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그래서 어찌 되었는가? 불행하게도 한국 교회는 극단적인 보수와 극단적인 진보로 양극화되는 비극을 겪어 왔다. 전자는 내세를 강조하는 일에, 후자는 현세를 강조하는 일에 치우쳐, 결국은 양쪽 모두 다른 하나를 잃어버리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따라서 제자 훈련의 뿌리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복음주의에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평신도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진정한 제자 훈련은 평신도가 날마다 사회 속에서 성과 속을 따로 구별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느 산 제사로 드려야 할 제사장으로서의 소명을 분명히 가르치는 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제자 훈련을 단순히 전도인을 양성하는 코스로 혹은 훈련 사역자양성과정으로만 보는 시각은 하나의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셋째로 제자 훈련은 수준 있는 중산층 이상의 평신도에게만 가능하다는 오해다. 이상하게 이런 오해를 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많은 것 같다. 자신이 제자 훈련을 하지 못하는 입장을 변호하는 데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구실이 될지 모르지만 사실은 굉장히 비뚫어진 시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자 훈련의 열쇠는 지도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달린 것이지 평신도가 어떤 사람이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농촌 교회와 빈촌에서 창의적인 방법으로 제자 훈련을 잘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더러있다.
2. 제자 훈련과 다른 목표들과의 관계 세계제자훈련원 ,(완벽) 제자훈련1-입문,철학편 (바라.1987)
하나님은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에게 5가지의 주요 사역 목표를 주셨다
(1)전 세계 복음 전파 : 제자됨의 첫 단계를 차지하는 기초적인 것으로 “회개와 믿음”으로 일컬어지며, 사단의 권세 아래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있는 사람들을 돌이켜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세상에서의 전도 사역을 마치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교회사의 대부분은 확장의 개념을 잃어가고 흔히 무시되는 경우를 본다.
(2)조직적인 교회 : 예수님께서 그룹 안에서 사역을 하셨고, 제자들은 그 안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가르침을 잘 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교회라는 말은 “한데 모인 혹은 함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무리”라고 정의하며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로써 모이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히10:25). 따라서 교회의 설립과 성장이 주요 목적임을 알수 있다.
옥한흠, 「평신도를 깨운다」 (서울: 두란노서원, 1984).
세계제자훈련원 ,(완벽) 제자훈련1-입문,철학편 (바라,1987).
데이비드 왓슨 .「제자 훈련」 (기독교문서선교회,1993).
김성복.영적 제자훈련(리더.지도자용교제 .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83).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