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커피

 1  아랍 커피-1
 2  아랍 커피-2
 3  아랍 커피-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아랍 커피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아랍커피
유럽에서 가장 고전적인 도시를 꼽으라면 독일의 동부에 위치한 라이프찌히(Leipzig)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단자이론으로 신을 증명하려던 철학자이며 수학자인 라이프니츠(1646-1716)가 공부를 한 곳이며, 대문호 괴테(1749~1832)와 쉴러(1759-1805), 노발리스(1772-1801)가 작품을 쓴 곳이며, 바하(1685-1750), 멘델스존(1809-1847), 슈만(1810-1856), 바그너(1813-1883) 등이 음악의 활동무대로 삼은 곳이다. 라이프찌히를 배경으로 한 이들은 18세기와 19세기 유럽 문화사의 획을 긋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꽃피웠다. 이런 걸출한 세기의 천재들을 배출한 곳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법한데, 합리적 생각을 하는 그들의 대답은 간단하다. 라이프찌히가 당시 상업의 중심지였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으며, 그래서 새로운 문물에 대한 교류가 쉬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도심 한 가운데는 카페 바움(Cafe Baum)이라는 커피숍이 있다.
카페바움은 1720년에 시작되었다고 하니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원래 이름은 Zum Arabischen Coffe Baum이라고 하여 아마도 아랍계 상인에게서 커피를 공급받은 곳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5층 건물의 대단한 규모를 갖춘 이 카페바움은 1층과 2층에서는 커피숍과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그 위로는 커피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카페는 아라비아식, 비엔나식, 프랑스식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명사들의 이름을 딴 소규모 방도 있다. 특히 슈만의 방이 인기가 있지만, 주로 단체 그룹을 위한 것이라 예약이 필요하다. 단골 명사들의 고정석이었다는 슈탐티쉬(Stammtisch)들은 지금도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커피 박물관은 무료로 이용되고 있었으나 그 규모가 적지 않다. 각종 커피 잔을 비롯해서 커피 끓이는 기계, 그리고 커피 생산의 과정들이 매우 흥미롭게 전시되어 있다. 특히 커피와 함께 17세기 이래로 유럽사회가 변화되어 가는 모습이 마치 문화사 강의실 같은 느낌이다. 박물관에는 경쾌한 음악이 계속되고 있었다. 토마스교회에서 지휘를 하던 바하가 작곡한 「커피칸타타」였다. 바로크 냄새가 가득 풍기는 가볍고 기교에 찬 이 음악의 원래 제목도 유쾌하다. “조용히 해! 말하지 말고...(Schweigt stille, plaudert nicht.)” 딸 리센(소프라노), 해설자(테너), 아버지 쉬렌드리안(베이스)가 커피를 두고 벌이는 에피소드이다. 그 당시는 유럽에 커피가 유행하기 시작하여 오늘날과 같이 커피를 전문으로 하는 카페가 곳곳에 생겨나고 있을 때이다.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던 모양인데, 바하는 그것을 풍자하고 있다. 특히 고루하고 보수적인 성격의 구세대를 대표하는 아버지와 명랑하고 개방적이며 진보적인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딸을 통해 대비되는 세대 간의 갈등은 음악을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 짓게 한다.
아버지는 딸에게 커피가 해로우니 마시지 말라고 수없이 잔소리를 해댄다. 그러나 딸은 들은 척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는 하루에 세 번씩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고 한다. 커피는 키스보다 더 달고 술보다도 더 부드러우며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나 뭐래나. 결국 아버지는 커피를 끊지 않으면 시집도 안 보낼 것이며, 산책도 시키지 않을 것이고, 유행하는 옷도 사주지 않겠다고 공갈을 친다. 그러나 딸은 커피만 마시게 해준다면야 그런 건 다 상관없다고 응수한다. 엎치락뒤치락하던 둘은 겨우 화해를 하는데, 커피를 안 마시는 조건으로 아버지는 딸의 신랑감을 구해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딸 리센이 내건 결혼 조건은 기가 막히는 반전이다. 자신이 커피마시는 것을 허락하는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 대부분이 커피 광이었을 텐데, 딸 리센의 재치는 그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을 것이다.
이제 커피 맛을 좀 더 음미해야 할 것 같다. 케익 한 조각과 함께 차려진 커피 한 잔은 그야말로 “키스보다 더 달고 술보다도 더 부드러우며 마음을 기쁘게” 해 준다. 하루에 세 번씩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밥을 먹지 않는 날은 있어도 커피를 거르는 날은 별로 없었던 같다. 요즘은 스타벅스 커피와 더불어 많은 학자들이 글로벌리즘의 현상을 설명하기도 한다. 아마도 그것은 미국적인 성공을 동경하는 젊은 비즈니스맨들의 감성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17세기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카페바움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17세기의 커피는 ‘잠을 깨워주는 음료’라는 특징이 더 중요할 것이다. 사실 밤새워 공부해 본 사람들은 알지만, 커피는 잠들지 않게 한다. 의식의 각성, 그것이야말로 근대의 특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카페에서는 커피로 말미암아 깨어있는 사람들의 정보가 모이고, 시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생산된다. 거기서 토론이 이루어지고 공공성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도 바하의 그 달콤한 커피 찬가에 혼을 빼앗겨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다. 끊임없이 깨어있다는 사실은 매우 피곤한 일임에 틀림없다.
바하가 얼마나 깨어있었는지를 말해주는 것은 그의 음악이다. 그의 음악에는 고도의 논리성이 내재되어 있어 세월이 갈수록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의 곡은 차라리 수학이나 다름없다고 할 정도이다. 그가 커피를 많이 마셨다는 증거는 없지만, 자녀를 20명이나 두어 마치 북새통 같았을 생활 속에서도 수많은 걸작들을 남긴 것은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는 원래가 정신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소문이 있다. 어느 날 여행을 다녀오니 아내는 이미 죽고 장례식까지 마친 상태였다. 결혼 13년 동안 7명의 자녀를 낳은 첫 번째 아내였다. 바하가 망연자실해 있을 때 장의사가 와서 장례비를 청구했던 모양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 때 바하는 “아내하고 의논하시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그의 창작활동은 커피 덕분이었다고 아니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미국 작가 윌리암 유커스는 『커피의 모든 것』 Ukers, William Harrison (2008). All About Coffee. Martino Pub.
이란 책에서 양치기 소년이 커피를 발견했다는 전설을 소개했다. 7세기 경 에티오피아의 양치기 소년 칼디는 평소 얌전하던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따먹고 나면 갑자기 흥분 상태를 보이는 것을 관찰했다. 그래서 칼디가 그 열매를 따 먹어 본 결과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고, 이 사실을 전해들은 이슬람 성직자가 이 열매에 잠을 쫓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후 신도들에게 애용토록 해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에티오피아의 카파라는 지역은 칼디가 커피나무를 처음 발견한 곳이기도 한데, 지금도 야생커피를 수확한다. 에티오피아의 커피가 주변 국가로 전해지면서 카와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카파란 커피의 또 다른 어원이기도 한데, ‘식물에서 나는 와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종교적으로 알코올을 멀리하는 이슬람 문화 속에서 술 대신 각성의 효과가 있는 커피를 애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7세기 초 커피라는 이름을 얻기 전, 유럽에서 아라비아의 와인 으로 불렸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와인은 흥겨움, 인생과 문학, 예술을 논할 수 있는 근간이 되기도 했지만, 이성의 망각, 정신의 무기력함, 방탕한 생활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에 반해 커피는 와인과는 정반대였다. 때로는 두렵게도 느껴지는 검은색 음료. 천사 가브리엘이 마호메트에게 가져다주었다는 쓴맛의 이 음료는 철저한 안티 바쿠스적 음료이다. 와인은 긴장을 완화하여 몸을 풀어지게 하고 잠에 골아떨어지게 만들지만, 커피는 인간의 머리를 깨우고 잠을 쫓으며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이 검은색 카페인 음료는 엄청난 마력으로 사람들에게 다가 왔다.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와 그에 반하는 쓴맛, 넘치는 에너지를 주는 녀석은 악마처럼 퍼져 나갔다. ‘각성’의 힘을 맛본 사람은 녀석의 힘에 자꾸만 빠져 들었다. 커피는 이성적이며, 무의식과 무지에 대항해 나가는 아라비아 문화의 중심에 서게 되었으며 그 힘은 바쿠스의 힘을 제압해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커피는 이슬람의 음료지만 이슬람세계에서 환대만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각 지역의 술탄과 칼리프들로 부터 박해를 받은 역사도 있다. ‘알라신께서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밤을 만들었는데 커피는 사람을 잠에서 자유롭게 하여 알라신의 뜻에 그르친다.’라는 논리로 커피의 음용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혹은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술탄의 권력에 맞서는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두려워해 음용이 금지되기도 하였었다. 17세기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대량의 커피를 획득한 폴란드인 콜쉬츠키(Georg Kolshitsky)가 유럽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착안하면서 부터 유럽에서 커피는 국가의 활력소가 되었다. 콜쉬스키는 1683년 투르크군에 점령당한 신성로마제국 수도 빈(Wien)에서 투르크군이 독일·폴란드 연합군에 패하자, 그들이 두고 간 커피 열매로 빈(Wien)식의 커피를 탄생시킨 사람이다. 사람들은 커피하우스로 모여 들었으며 커피 하우스에서는 자유주의와 문화와 예술에 대한 토론과 더불어 계몽사상도 피어났다. 시민운동과 혁명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싹트기 시작하여 이슬람 문화권에서 탄생한 커피가 기독교 문화권에서 꽃을 피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