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프란시스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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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낭만주의 프란시스 고야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낭만주의 ” - 프란시스 고야
서론 : 들어가면서
평소 문학과 예술에 대해서 관심은 많지만 항상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이해해왔었다. 그래서 어디서 들은 풍월만 많았지 제대로 아는 것은 없었다. 방학 때 마지막 학기 수강신청을 하면서 이 수업을 들을지 말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었다. 수강 신청을 하기 전, 강의 계획서를 항상 세밀히 하나하나 다 읽어보는데 교재도 여러 권이었고 매 주마다 미리 예습을 하지 않으면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놀고 잔머리 굴리는 거에 바빠 제대로 취업 준비를 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학기는 여유롭고 마음 편히 들을 수 있는 과목만 신청하자고 생각해서 처음엔 그냥 제쳐놓았지만 학기 중반이 넘어가는 지금은 정말 듣길 잘 했다는 안도감이 든다.
사실 과제를 배당받았을 땐 내심 예전에 들었던 전공 수업인 “정치와 예술” 과목에서 과제로 리포트를 작성했었던 ‘인상주의’를 하고 싶었다. 그 때 당시 후기 인상주의 작가 중 한 명인 ‘세잔’을 연구 주제로 잡고 리포트 과제를 수행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낭만주의로 배정받고 바로 머리를 스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프란시스 고야’였다. 당시 수업시간에 고야의 그림을 보고 강렬하고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강한 인상을 받았었는데, 너무나 많은 학우들이 프란시스 고야를 연구 주제로 잡은 것을 알고 피했던 것이 기억나면서 이번 기회에 낭만주의와 대표 화가인 프란시스 고야에 대해서 깊진 않지만 내 나름대로의 인상을 피력해보려고 한다.
본론 : 1) 낭만주의
먼저 짧게나마 낭만주의에 대해 설명하자면, 낭만주의는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사회가 급속히 도시화되는 상황에서, 아카데미즘과 프랑스의 구체제에 대한 반발로서 등장한 미술이다. 합리주의에 반대하여 객관보다는 주관을, 지성보다는 감정을 중요시하고 개성을 존중하였다. 낭만주의의 미술의 특징은 격정적이고 숭고한 비장감, 조국애, 인간과 자연과의 융합감 등의 감정 표현이 두드러진다. 이전의 고전주의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오직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 추한 것 까지 그려낸다.
2) 프란시스 고야 -
이러한 낭만주의 미술에 대표적인 화가가 몇몇 있지만 그 중 스페인 화가인 고야가 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나폴레옹 군대가 자국민들에게 저지른 동물적 만행을 고발하는 내용의 작품이 있는데, 바로 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후, 전쟁이 유럽 전역을 휩쓸면서 프랑스군은 자기 힘을 과시하고 싶어 했다. 나폴레옹을 선두로 프랑스는 유럽을 장악하여 이집트까지 이르는 넓은 영토를 장악하였고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하였다. 스페인도 식민지가 되어버린 나라 중 하나였다. 스페인은 꾸준히 시민들에 의한 독립 운동을 펼쳤다.
위의 그림은 명백히 사실적으로 프랑스군의 만행을 그대로 ‘고발’하는 장면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완벽하게 무장한 프랑스 군들이 맨 몸으로 투항하고 있는 스페인 인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장면. 스페인 인들의 얼굴에선 투쟁 의지가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두려움에 가득 떨고 있으며 아래엔 이미 죽은 시민의 시체가 널브러져있다. 그 옆에 한 남성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있다. 처형당하는 그들은 대부분 힘없는 자들이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무고한 희생이다. 등을 돌린 프랑스 군들의 뒷모습에선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위가 어떤 행위인지 전혀 무감각하다는 느낌이 든다. 처음 자유를 위해 혁명을 이끌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온전한 자유를 위해 행동한 자들을 오히려 처형하려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들을 뒷모습으로만 표현한 것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라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나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붉은 계열의 어두운 색채가 차지하고 있는 와중에, 흰 옷을 입고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남성에게 시선이 쏠리면서 더 극적인 묘사를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큰 눈과 겁에 질린 얼굴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가슴 아프게 한다.
결론 : 당시 사회상과 낭만주의
‘낭만주의’는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러한 ‘낭만’적인 사조가 아니라는 것을 다른 수업을 통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낭만’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이미지를 쉽게 지우기는 힘들다. 낭만주의가 퍼져나가던 당시의 전쟁의 잔혹함은, 우아할 수 없고 격정적이었다. 특히 당시 전쟁의 발판이 된 프랑스 혁명은 역사적으로 많은 의의를 갖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프랑스 당국에게는 특히나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족적을 남긴 큰 사건일 것이다. 나 역시 이 그림을 보기 전에는 유럽에 ‘자유’라는 이념을 전파한 사건이라는 생각이 제일 컸다. 하지만 ‘혁명’은 결코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상대편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 물자와 사람을 동원한다. 피와 열정이 동반하며 희생이 필요하다. 발단은 ‘고전적 기반’이지만 그 진행 과정은 매우 격정적이고 열정적이다. 결코 제정신으로 행동할 수 없는 행위이다. 낭만주의 미술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사조에는 ‘고전주의’가 있었고, 당시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여 아름다운 것만이 아닌 희생이라는 참혹한 사실을 숭고하게 그려냈다고 여겨진다. 적어도 고야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