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의 형이상학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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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농구의 형이상학적 접근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농구의 기원
농구의 최초 창안자는 메사추세츠주의 스프링필드에 있는 YMCA 체육학교 체육학 부장인 귤리크박사의 스포츠 창안 연구를 위촉받은 캐나다 태생의 제임스 네이스미스(James Naismith) 박사이다. 1891년 당시 30세였던 그는 체육학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열정으로 행정관의 꿈을 접고, 스프링필드의 YMCA 체육대학에 체육교사로 들어갔다.
당시 스프링필드의 YMCA에서는 체육시간에 주로 미식축구를 했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눈이 많기로 소문난 이 지역에서 미식축구를 1년 내내 하기는 무리였고, 그나마 겨울철 실내에서 했던 행진연습이나 맨손체조 등은 뛰고 싶은 욕구를 가진 젊은 청년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리하여 네이 스미스박사는 당시 성행하던 풋 볼의 스피드와 드릴을 즐기되, 실내의 제한점을 고려한 13개 조항의 기본 룰을 제정하여 농구경기를 창안하기에 이르렀다. 농구경기의 탄생은 우천시나 추운 겨울에도 체육관 안에서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호응을 받아 YMCA를 통하여 전 미국에 보급되기 시작 하였다.
◇ 최초의 농구 경기
1891년 12월에 거행된 사상 최초의 농구경기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인원수에 제한없이 당시의 학생수(18명)를 둘로 나누어 9명이 한 팀으로 플레이를 했고 공은 축구공을 사용하였으며 골대는 복숭아 바구니를 체육관의 양쪽 발코니에 10피트(305cm) 높이로 달아 사용했다. 그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학생들은 각자의 집에서 이 이름모를 스포츠를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반응은 매우 좋았으나 다만 한가지 이 스포츠는 바구니가 막혀 있어서 공이 들어갈 때마다 꺼내어 진행하는 불편함이 있었고 체육관 발코니에 달아맨 바구니에 슛을 하기 때문에 실패하게 되면 공이 멀리 달아나서 그것을 가지러 가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 신생 스포츠는 1892년까지 이름을 갖지 못한 채 전해지기만 했다. 한 학생의 네이스미스볼 로 하자는 제안에 겸손한 네이스미스는 이를 거부하고, 바구니를 사용한 스포츠이므로 바스켓볼 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지금까지 불리우게 된 것이고, 동양의 일부 국가에서는 상자 라는 뜻의 농(籠)자를 써서 농구(籠球) 라 부르고 있다.
우주
- 경기장
경기장은 바닥이 단단한 평면으로 직사각형이어야 하며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 규격은 경계선 안으로부터 측정하여 길이 28m, 너비 15m이어야 한다. 그 밖의 지역의 대회 또는 국가별 연맹이 주최하는 대회에서는 최소 규격으로 길이 26m, 너비 14m의 코트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국내경기에 있어서 부득이 코트의 규격을 축소해야 한다면 2:1의 비율로 하되 최소 규격은 길이 26m, 너비 14m이상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