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전염병이란 ?
오랫동안 질병은 사람이 알 수 없는 초자연력, 특히 신의 노여움에 의해 발생한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 뒤, BC 3세기에 의성 히포크라테스가 그의 저서에서 질병의 발생은 온도와 습도, 주거지의 조건, 계절 등의 환경요인과 깊이 관련되었음을 역설한 이래, 불명확한 공기의 변화가 역질을 유발한다는 설이, 16세기 중엽 전염설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 파스퇴르와 코흐의 미생물병인설이 인정을 받을 때까지 지배하였습니다.
따라서 질병의 원인이 밝혀지기 이전의 전염병 관리는 미신적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제물을 바쳐 신에게 제사드리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나 병인과 그 전파양식이 확인되면서부터 치료제 및 예방접종의 발명, 환자와 건강접촉자의 격리, 환경의 위생적 관리, 교통차단 등 새로운 예방법이 점차 발달하였습니다.
역사 속의 전염병
사라진 문명이 있듯이 아예 존재 자체가 사라진 질병도 여럿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천연두뿐이며, 인간의 노력으로 퇴치된 유일한 질병도 바로 천연두입니다.
6·25 와중에 태어날 때 가장 무서워하던 병이 바보가 된다는 뇌염과 천연두였습니다. 그만큼 치사율도 높았고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9년에 마지막 천연두 환자가 보고된 뒤로 40년 가까이 새 환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세계적으로도 1977년 이후로 환자가 생기지 않아 세계보건기구는 공식적으로 천연두를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진 질병으로 공표했습니다.
역사상 천연두의 존재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첫번째 사례는 기원전 1160년 무렵, 당시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5세가 천연두로 사망한 사실입니다. 인도에는 그전부터 천연두의 신을 모시는 사원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질병의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천연두는 곰보, 실명, 지체부자유 등 무서운 후유증도 남기지만 사망률 또한 높다. 독성이 강한 천연두의 경우, 특히 면역력이 없는 집단에서는 사망률이 90%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 가장 유명한 피해 사례가 아메리카 원주민의 경우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유럽의 침략자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천연두가 없었으며, 따라서 면역력도 없었습니다. 약탈자들의 몸에는 총과 칼 외에 그보다 더 무서운 무기, 즉 "천연두 바이러스"가 있었습니다. 비극은 1518년부터 시작되어 31년까지 원주민의 3분의 1 이상이 천연두로 사망했습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살아남은 원주민들에게 면역력이 생길 즈음에는 각각 홍역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몰려들었으며 마지막으로 발진티푸스 병원체가 기진맥진한 원주민 사회를 덮쳤습니다. 300여년이 지난 뒤에야 존재가 밝혀진 이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들은 중남미 원주민 전체의 90%를 사망으로 몰고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참극을 연출했습니다. 이러한 비극은 다음 세기, 지금의 미국 땅에서도 재현되었다.
중세 말과 근대 초의 흑사병이나 신대륙의 천연두에 비해서는 사망률이 훨씬 낮았지만, 천연두는 유럽에서 19세기까지도 여전히 위협적인 질병이었다. 1680년 무렵 런던에서는 한해에 5000명 가량의 환자가 발생하여 그 가운데 20%인 약 1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19세기 초에 이르러서도 영국에서는 해마다 4만5000명쯤이 천연두로 사망했습니다.
-대처법
에드워드 제너(1749~1823)가 우두접종법을 발견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제너의 종두법은 근 2세기에 걸친 천연두 박멸의 위대한 역사를 연 위업이었을 뿐만 아니라, 질병에 대해 진정 효과적인 처방을 처음으로 구사하게 된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조선시대 말 우리나라를 포함해 유럽 바깥 지역에 서양의학이 도입된 것은 종두법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스페인독감 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학자들은 1918년 여름 악성 독감이 동시 다발적으로 유행하고, 첫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독감 이름을 스페인독감으로 부르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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