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러의 생애
1870년 비엔나에서 한 중산층의 유태 가정의 차남으로 출생한 아들러는 매우 병약했는데 구루병을 앓았고, 때로 후두 경련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동기의 아들러에게 가장 의미심장한 사건은 바로 밑 동생이 그의 옆 침대에서 죽은 사건이었으며, 그 다음해에 중증의 폐렴을 앓으면서,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 후 1895년 비엔나 대학에서 의사학위를 받고 안과의사를 거쳐 일반개업의가 되었다.
그는 병이란 것을 결코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늘 인격전체로 이해하려고, 즉 정신적 과정과 신체적 과정 사이에 있는 깊은 연관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그의 훌륭한 진단과 뛰어난 치료능력은 그의 명성을 높여 주었으나 하지만 당뇨병 환자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에 보다 더 원조 가능한 치료분야에 뛰어들 것을 결심하여 신경학으로 전향하였다.
1902년 4명의 창립인원의 일원으로서 Freud의 주말 토론모임을 시작했고 1910년 비엔나 분석학회회장을 맡았지만 성적요소를 강조하는 Freud의 이론을 강하게 비판하고 반대하며 Freud와 계속적인 갈등관계를 유지했다. 의장직을 사임한 후에는 함께 탈퇴한 7명의 학자들과 함께 1912년 개인 심리학회를 창설하며 해당분야의 연구를 계속했다.
1926년 미국에 초청을 받아 여러 대학에서 강연을 했고, 1934년 Long Island의 New York 대학에서 의학 심리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1937년 순회강연 중 스코틀랜드의 애버딘에서 심장 발작으로 사망함
개인심리이론
1.인간관과 기본가정
아들러는 유전적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성격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고 있지만 각 개인이 지닌 창조적인 힘이 인간의 본성을 결정하는데 더욱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프로이드와 같이 아들러는 성인의 삶이 초기 5년 동안의 경험에 의해 많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아들러의 초점은 과거의 탐색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거에 대한 개인의 지각과 초기 사상에 대한 해석이 현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 더 관심이 많았다. 예를 들어 아들러는 인간은 성적인 충동보다는 주로 사회적인 충동에 의해 동기화된다고 보았다.
①총체적 존재: 인간은 통일되고 자아 일치된 유기체.
인간을 전체적 관점으로 봄.
②목표지향적 존재: 인간은 역동적으로 완성을 추구하며, 개인적으로 중요한 인생목표를 향해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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