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교육론 - 구운몽 - 꿈의 해석 - 양철북
[가] 꿈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생시의 심적 행위의 관련 속에 넣을 수 있는 것이므로 매우 복잡한 정신활동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에 대해 거의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또다시 많은 새로운 문제에 휩싸이게 된다. 만일 꿈이 어떤 소망의 충족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이 소망 충족의 표현 양식이 갖는 기묘함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 우리들이 눈을 떴을 때에 기억하는 현몽이 꿈의 사고로부터 형성되기에 이르기까지 그 사고 속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가? 이 변화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졌는가? 꿈은 우리들의 내면의 심적 과정에 관해어떤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는가? 꿈 내용은 우리들이 낮 동안에 믿고 있는 생각을 수정할 수 있는가? 우리들의 어떤 꿈은 분명히 소망의 충족이었으나 어쩌면 다른 꿈은 공포의 실현으로 해명될지도 모른다. 또 다른 꿈은 다만 어떤 기억의 재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또 다른 종류의 소망의 꿈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꿈은 반드시 소망의 충족으로 한정되어 있는 것일까? (...)
명백하게 소망 충족을 나타내고 있는 꿈도 물론 있다. 소망충족이 식별하기 어렵게 위장하고 있을 경우 거기에는 이 소망을 충족시키지 않으려는 어떤 마음의 움직임이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방어적인 마음의 움직임에 의해서 소망은 틀림없이 왜곡되어 나타날 것이다. 사회생활에서도 이와 같은 심적 왜곡을 찾아볼 수 있다. 내가 날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예절은 그 대부분이 이런 종류의 위장이다. 정치 평론가도 이와 비슷한 사정에 놓여 있는데 그는 권력자에게 불쾌한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그가 솔직하게 직언하면 권력자는 그의 언론에 압력을 가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견의 표현을 부드럽게 하거나 왜곡한다. 문필가는 검열의 강약이나 민감성의 정도에 따라서 공격의 어떤 형식만은 취하지 않든가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 암시만 한다든가 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위장으로 자신의 의도를 숨기지 않을 수 없다. (중략) 사람은 누구나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소망이나 자기 자신에게조차 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또 한편 우리는 이 모든 꿈들의 불쾌한 성격을 꿈 왜곡의 사실과 관련 지어서이 꿈들이 이렇게도 왜곡되어 꿈속의 소망 충적을 알지 못하게 은폐하는 것은 틀림없이 이 꿈의 내용이나 그 꿈에서 알 수 있는 소망에 대한 억압 및 혐오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꿈 왜곡은 사실상 검열행위임을 알 수 있다. 즉 꿈은 어떤(억압되고 배척된) 소망의(위장된) 충족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中
[나] 양부인이 옷깃을 여미고 물어 가로되,
“승상이 공을 이루고 부귀 극하여 만인이 부러워하고 천고에 듣지 못한 바라. 가신을 당하여 풍경을 희롱하며 꽃다운 술은 관에 가득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이 또한 인생의 즐거운 일이거늘 퉁소 소리 이러하니 오늘 퉁소는 옛날 퉁소가 아니로소이다.”
승상이 옥소를 던지고 여인들을 불러 난간을 의지하고 손을 들어 두루 가리키며 가로되,“북으로 바라보니 평한 들과 무너진 언덕에 석양이 쇠한 풀에 비치었는 곳은 진시황의 아방궁이요, 서로 바라보니 슬픈 바람이 찬 수풀에 불고 저문 구름이 빈 뫼 덮은 데는 한 무제의 무릉이요, 동으로 바라보니 분칠한 성이 청산을 둘렀고 붉은 박공이 반공에 숨었는데 명월은 오락가락하되 옥난간을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 이는 현종 황제가 태진비로 더불어 노시던 화청궁이라. 이 세 임금은 천고 영열이라 사해로 집을 삼고 억조로 신첩을 삼아 호화 부귀 백 년을 짧게 여기더니 이제 다 어디 있나뇨.” (중략)
어떤 대사가 소리를 높여 묻되,
“성진아, 성진아! 인간계의 재미가 과연 좋더냐?”
성진이 눈을 번쩍 뜨고 쳐다보니 육관 대사가 엄연히 서 있는지라. 성진이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며 뉘우쳐 이르되,
“제자 성진은 행실이 부정하오니, 스스로 지은 죄인데 누구를 원망하리요. 결함의 세계에 살면서 윤회하는 재앙을 받을 것이거늘, 스승께서 하룻밤의 허망한 꿈을 불러 깨우시어 성진의 마음을 알게 하여 주시니 스승의 깊은 은혜 천만 겁을 지나도 갚지 못하리로소이다”
김만중, 中
[다] 나는 테이블 밑으로 드리워진 식탁보의 그늘에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가볍게 북을 치면서, 나는 머리 위에서 카드를 돌리는 손놀림을 느꼈다. 게임의 진행을 좇아, 한 시간 후 스카트의 결과를 알게 됐다. 얀 브론스키의 패배였다. 그는 패가 좋았으나 그래도 졌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므로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는 ‘2 없는 다이아몬드’보다는 전혀 엉뚱한 일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임이 시작되자 그는 그의 숙모에게 조금 전에 껌껌한 가운데서 생겼던 조그만 난동은 별로 흥분할 게 못 된다는 말을 하면서 왼발의 검은 단화를 벗고, 회색 양말을 신은 외발로 내 얼굴 옆을 지나서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내 어머니의 무릎을 더듬어 찾아냈다. 어머니는 그의 발이 닿자마자 테이블 쪽으로 몸을 바싹 당겼다. 바로 그때 마쩨라트의 도전에 응해 33점을 내민 얀은 우선 발끝으로 그녀의 옷자락을 걷어올리고, 그날 새로 신어서 감촉이 둔한 새 양말로 그녀의 넓적다리 사이를 편력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정말 놀랍게도 어머니는 테이블 밑에서 순모(純毛)에게 공격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풀기가 빳빳한 식탁보 위에서는 가장 대담하게 게임을 이끌어 가장 유머러스한 회화를 확실하게 반주하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얀은 밑에서는 점점 대담해졌지만 위에서는 오스카가 졸면서 했어도 이길 수 있는 승부를 몇 차례나 놓치고 있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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