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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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허풍의 미학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허풍의 미학
1. 장자
중국 고대 도가(道家)의 사상가. 이름은 주(周). 송(宋)에서 태어나 맹자와 동시대에 노자를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실재성은 의심스럽다. 전국시대 말기, 도가의 사상가들이 원본 『장자』(莊子)를 편찬할 때, 이것을 장주(莊周)에게 가탁(假託)하여 『장자』라 명명한 것인 듯하다. 이 『장자』는 공자ㆍ맹자보다 노자와 함께 장자가 존중되기에 이르렀던 한대 초기에, 전국 말 이래의 도가의 논저(論著)를 부가하여 성립한 것으로서, 통일된 체계는 없지만 도가 사상의 역사적 전개를 볼 수 있다.
그 기본적 사상의 중심은 당시 지배자의 지위에서 몰락하고 있던 사상가들이, 뜻대로 되지 않는 사회 속에서 개인의 삶에 얽힌 근심과 고난으로부터 관념론적으로 도피하려고 한 인생론에 있다.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은 근심의 근원인 자기의 육체ㆍ정신을 버리고 허정(虛靜), 염담(恬淡)의 심경에 도달하여 자연의 법칙에 따르고 어떠한 것에도 침해받지 않는 자유ㆍ독립을 얻어 세계의 밖에서 초연하게 노니는 것이다. 이것을 실현한 사람이 진인(眞人)이다. 이 인생론의 근저에는 세계는 불가지의 실재인 도(道)의 표상이라는 세계관과, 개념적 인식과 가치판단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의미한 것이고 철저한 무지(無知)만이 올바른 것이라고 하는 지식론이 깔려 있다.
이 지식론은 명가(名家)의 궤변이나 전변(田騈)의 제물설(齊物說)의 비판적 섭취에서 성립, 얼마 후에는 세계관과 혼합하여 세계의 존재와 운동은 도(道)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존재론, 우주 생성의 전설을 받아들여 태초의 혼돈=도로부터 세계가 유출하였다고 하는 우주생성론 및 음양 오행설을 채용하여 물(物)의 생사(生死)를 기(氣)의 집산으로 설명한 자연론 등이 전개되었다. 『장자』의 새로운 부분에는 위와 같은 생각에 기초하여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인민을 통치한다고 주장한 정치 사상도 있다. 철학사전 2009 철학사전편찬위원회 임석진 외 30인
2. 소요유
1) 북명에 고기가 있고 그 이름을 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가 되는지 모른다. 화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이라 한다. 붕의 등은 몇천 리인지 모른다. 성이 나서 날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곧 바야흐로 남명에 날려고 한다. 남명이란 천지이다.
제해란 괴를 아는 자이다. 해가 이르기를 [붕이 남명으로 옮길 때 물은 삼천리를 치고 회오리바람을 두드리며 구만리를 오르는데 여섯 달을 난 뒤에야 쉬는 자]라고 했다. 장자(내편)역해 1994 한용득 P7
2) 아지랑이와 티끌과 생물이 토해내는 숨결로 가득 차 있는 지상에서 올려다보면 하늘은 그저 검푸르기만 하다. 그러나 그것은 하늘 본디의 빛일까. 너무도 멀고 끝이 없어서 일까. 그 아래를 굽어보아도 또한 그러할 뿐이다.
또 무릇 물이 얕으며 큰 배를 띄울 힘이 생기지 않는다. 물 한잔을 봉당의 움푹한 곳에 쏟으면 티끌이 떠서 배가 되겠지만 잔을 놓으면 땅에 닿고 만다. 물은 얕은데 배가 크기 때문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바람도 강하게 일지 않으면 대붕의 큰 날개를 실을 만한 힘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늘로 구만리나 올라가야 바람은 그 밑에서 일게 되는 셈이다. 이리하여 비로소 대붕은 바람 등에 올라타 푸른 하늘을 업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남을 향하여 나는 것이다. 장자(내편)역해 1994 한용득 P9
3) 쓰르라미와 작은 비둘기는 대붕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비웃는다.
[우리들은 힘차게 날아올라 느릅나무나 참빗살나무를 향해 돌진하여도 때로는 그곳에 미치지 못하고 땅바닥에 나가떨어지는 일이 있다. 그렇건만 구만리의 높이에 올라 남을 향하여 간다 하니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닌가]
하지만 근교의 들에 나가는 자는 세 끼의 식사를 할 뿐으로 돌아와도 배가 고픈 일은 없을 테지만, 백리의 곳에 가는 자는 전날 밤부터 방아를 찧어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고, 천리 길을 가는 자는 석 달 전부터 양식을 모아두지 않으면 안 되리라. 하지만 이 두 벌레야 그런 것을 어찌 알겠는가. 장자(내편)역해 1994 한용득 P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