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mily Dickenson
Ⅰ. Emily Dickinson -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1. Emily Dickinson의 생애
에밀리 디킨슨(Emily Elizabeth Dickinson)은 1830년 매사추세츠 주 에머스트의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다. 변호사이자 국회의원으로 명망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비교적 활발한 지적 자극과 교류 속에 성장하고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에밀리는 1847년에 마운트 횰리요크 여성 신학대학(Mount Holyoke Female Seminary)에 입학하였다. 신학대학이니만큼 모든 학생들은 직ㆍ간접적으로 신앙고백을 강요받았는데, 에밀리는 이를 끝까지 거부하였고, 1년 만에 중퇴하였다.
신앙에 회의하던 에밀리는 1850년 뜻밖의 방향에서 자신을 지탱해줄 것을 찾게 되었다. 아버지 사무실에 있는 법률학도 벤자민 뉴턴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메사추세츠 콩코드출신으로 자유사상을 펼친 초월론자 랄프 왈도 애머슨의 시집 한 권을 주었던 것이다. 후일 에밀리는 에머슨을 “타당성을 부여해 준 사람”이라고 불렀고 그의 시에 영향을 받아 직접 시를 쓰기 시작했다.
1855년 워싱턴으로 여행을 가다가 필라델피아에 잠시 머물게 된 에밀리는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된 찰스 워즈워스 목사를 만나 칼뱅주의적 정통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1862년 그가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갔을 때 에밀리는 1858년에서 1862년에 이르는 동안 그토록 풍부한 시를 낳게 해주었던 그 무엇이 사라지는 듯한 감정적 위기를 겪었다고 한다.
에밀리는 자라오면서 어찌된 일인지 외부세계, 또는 외부의 현실에 대한 관심을 잃어갔었고, 24세가 될 무렵에 이르러선 “난 무슨 큰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절대로 집을 떠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그것은 현실이 되어 갔고, 에밀리는 잠시의 볼일 외에는 결코 일생 동안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그렇게 독신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로 시작(詩作)에만 전념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2. 그녀가 살았던 시대 속에서 그녀의 시풍, 그녀의 삶의 방식(은둔생활),그녀의 세계관(종교관과 사상)
에밀리 디킨슨은 55년 5개월 동안 살면서 1,755편의 시, 1049의 편지, 그리고 약간의 산문을 남겼다. 그녀는 이 글들을 통해서 인간의 공통관심사인 신, 영원, 사랑, 삶 그리고 인간의 한계성 등을 다루었다. 이 많은 글들이 그녀의 생애동안 모두 출판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7-8편만이 익명으로 발표되었고, 그녀의 대부분의 글들은 서랍에 감추어진 채로 그녀가 생을 거둔 뒤 세상에 알려졌다.
① 그녀의 시가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던 시대, 그런 시대를 거부하고 홀로 시작(時作)을 했던 에밀리 디킨슨
당시의 시대는 19C 로 낭만주의 시풍이 만연했으나 그녀의 시는 17C의 메타피지컬 시풍(metaphysical, 형이상학적시)에 가까웠다. 운율에서나 문법 면에서나 파격적인 데가 있었기 때문에 19C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했으나, 20C에 들어와서 이미지즘이나 형이상학적인 시의 유행과 더불어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그녀는 이 세상을 끝마칠 때까지 처녀였다. 현실적으로 결혼을 거부하였을 뿐 아니라, 당대의 사회, 또는 문학이라고 이름 지어지는 모든 행위 - 가령 자신의 시를 발표한다거나, 저술을 한다든가, 명성을 기다린다든가 하는, 일체의 관습에 타협할 것도 거부했다. 그리고 이런 거부는 물론 의식적이라기보다는 천성적, 또는 천부적인 것이었다. 그녀는 생전에 겨우 7편 가량의 시를 ‘세상에 보일 목적’으로, 지면에 발표했지만, 곧 그녀는 발표를 포기하고 자기의 울타리 안으로 숨어 버렸다. 왜냐하면 당시로서는 그녀의 시는 받아들여지기 곤란한 것이었고, 그 다음 그녀의 독특한 스타일 - 즉 dash의 사용과 대문자의 사용, 또 행과 연의 특이한 구분 따위 - 은 편집자의 기이한 눈총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완전히 홀로 시를 썼다. 문학적인 대화 같은 것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② 그녀의 은둔생활과 작품에 영향을 준 청교주의에 대한 이단적 종교관 그리고 초월주의의 영향 그 후 자연주의의 영향
앞의 그녀의 생애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그녀는 일생동안 몇 번의 짧은 여행을 제외하고는 에머스트(Amherst)를 벗어난 적이 없었고 후반의 생은 거의 세상과 단절한 채 보냈다. 또 기이하게도 거의 흰 옷만을 입고 지내기도 했다. 따라서 평자들은 그녀에게 ‘뉴잉글랜드 수녀’나 ‘하얀 옷의 처녀’같은 신비적 수사들을 사용하였다. 그녀가 왜 평생 은둔생활을 했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가장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당대 종교적 삶의 방식에 대한 의식적인 저항의 한 형식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엄격한 청교도주의 집안에서 자랐지만 사춘기부터는 교회에 나간 적이 드물었고 30세가 되던 1860년에는 교회와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대의 기독교라는 것은 청교도주의를 말하는데 그녀는 이 청교도주의를 거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 영문학의 이해 이후지 상명대 p. 366~367
2. 현대 영미시 감상Ⅱ 동국대학교 출판부 p. 102~105
3. 영미문학의 길잡이 2 p. 147~156
4. 김유석 영미문학 박문각 p. 207~209
5. 유희태 영미시의 이해 p. 445~470
6. EMILY DICKINSON - A COLLECTION OF CRITICAL ESSAYS; edited by Richard B. Sewall
http://members.tripod.com/Poet1st/sonnet17.htm
http://blog.empas.com/bigchoicer/25251575
http://en.wikipedia.org/wiki/Hypallage
http://kr.dic.yahoo.com/search/kor/result.html?pk=144271&p=%C8%AF%C4%A1%B9%FD&field=id&type=kor
동영상 : http://kr.youtube.com/watch?v=ousRlAGZ_50
http://blog.naver.com/sla88?Redirect=Log&logNo=150017633485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