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과학적인 현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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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너무나도 과학적인 현대 사회
※ 읽기자료 1. 산업화의 빛과 그늘
산업화가 생활수준을 폭발적으로 향상시켰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산업화는 중대한 사회적 변화를 동반했다. 18세기 영국의 상황, 특히 버밍햄에서의 섬유 생산 기계화를 중심으로 한 상황은 최악이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몇몇 문학가와 정치철학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시를 통해 ‘영국의 악마 같은 공장들’에 대해 탄식했고, 『어려운 시절』을 쓴 찰스 디킨스는 코크타운이라는 가상의 마을에 사는 노동자들의 궁핍한 삶을 그렸다. 토머스 제퍼슨, 칼 마르크스 등 여러 지성들은 잉글랜드의 가상의 공장 마을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상황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산업화의 열매를 고루 나눌 수 있는 사회적 대안을 무엇인가 탐구했다. 제퍼슨의 미국식 농업 민주주의도, 마르크스가 찬양한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도 세월의 시험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그저 산업화의 어두운 결말에 대해 둔감해지는 것이 어떠한 혁명적인 조치보다도 효과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 라인에서의 작업의 단조로움과 산업화에 의한 발전으로부터 비롯된 직업의 멸종은 둔감해질 수 없는 걱정거리였다. 수십 년 전 여름, 나 역시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시카고의 한 플라스틱 공장에서 사출 성형 기계 작업을 할 때 실제로 그런 경험을 했었다. 기억 속에 깊이 가라앉아있던 그 사출 성형 기계는 조립라인이나 부품 조립 공장 또는 대량 생산 공장을 방문할 때마다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곤 한다. 그 기계의 싸이클 타임은 내가 방문했던 자동차 공장에서와 마찬가지로 1분이었다. 그 1분 동안 성형이 된 플라스틱 부품을 꺼내서 결함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본 후, 작업 완료 버튼을 누르면 다음 싸이클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작업에 걸리는 시간은 1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매 싸이클 시간마다 약간씩의 시간이 남았다. 문제는 그 휴식 시간이 내가 자리를 뜨거나 책을 읽거나 다른 일에 참견하기에는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루 종일 나는 머릿속으로 이 생각 저 생각 하며 방황했다. 끝없이 이어지던 기계의 싸이클은 나의 뇌리에 너무나 깊이 각인되어 있어서, 밤중에 자다가도 잠이 깨서는 반수면 상태에서 ‘쿵-쉬잇-퉁’ 하는 사출 성형기의 무자비하도록 규칙적인 소음이 들리는 듯 했다.
지금도 가끔씩 그 사출 성형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 기계들은 이미 오래전에 퇴물이 되고 훨씬 더 발전된 기계들이 이미 여러 대 그 자리를 거쳐 갔을 것이다. 지금은 기계들이 모두 자동화 되거나, 아니면 생산 시설 자체가 해외의 저개발 국가로 이전한 것 같다.
공학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 뿐만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생산 비용을 낮추고 삶의 수준을 꾸준히 향상시켜온 효율적인 생산 공정 설계가 바로 후자에 속한다. 수공업에서 현대적인 대량 생산으로의 역사적인 전환은 투자자들에게는 수익을, 소비자들에게는 구매 가능한 다양한 상품들을, 노동자들에게는 임금 인상을 가져다주었다. 산업 발전의 열매를 이 세 그룹 사이에서 어떻게 분배하느냐 하는 문제는 공학자들이 일상적으로 다루는 기술적인 과제를 훨씬 뛰어넘는 문제이다. 이는 가장 광범위하게 토론된 대중적인 논제이기도 하고 시민들의 정치적인 의사결정 과정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전사고, 지루함, 기술의 퇴화, 반복적 스트레스의 고통, 그 외에도 생산직 노동자의 일상적인 고민 등은 생산 경제와 강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산업공학 현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엘머 E. 루이스, 김은영 역,『테크놀로지의 걸작들』, 생각의 나무, 2006, 279~282쪽)
※ 읽기자료 2. 시(時)테크의 함정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라고 부른 근대의 에토스는 독특한 생활방법론과 상응한다. 근대의 프로테스탄트들은 인간을 욕망과 충동에 휩쓸리는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모색했다. 이들에게 욕망과 충동은 자신들의 소명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었던 것 같다.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될 수 있으면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부부간의 성교도 절대 쾌락을 느끼지 않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며, 채식과 냉수욕을 장려한다. 이때 노동은 욕망을 억누르는 최고의 경찰 노릇을 수행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의 삶에서 나타나는 가장 놀라운 변화는 시간표의 도입이었다. 원래 시간표는 중세의 수도원에서 생겨난 것이다. 확실히 시간표는 동양의 승려와 서양의 수사가 수도하는 방식에서 갖는 차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동양의 승려들은 도를 닦으면서 시간 의식을 갖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면벽 수도를 5년 했다고 하는 승려가 시간을 세면서 그 기간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도를 끝마치고 나자 5년이 지났더라는 식이다. 그러나 서양의 수도원에서는 도를 닦는 데 방해가 되는 충동이나 잡념을 억제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시간표가 이용되었다. 하루 동안 할 일을 시간 순서에 맞추어 적어 놓고 모든 행동을 그것에 맞춘다면 잡념이 들어오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의 수사들은 삶을 시간의 순서대로 분할해서 사악한 생각이 들어오는 것을 완전히 차단하고자 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프로테스탄트들을 통해 숲 속 외진 곳에서 도시 한 복판으로, 그리고 각자의 가정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시간표는 사람들의 삶을 계산 가능한 형태로 바꾸어주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꿈꾸던 철저한 자기 관리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사간표였던 것이다. 가정은 물론이고 학교와 공장에서 시간표는 아이들과 노동자들의 생활을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해주는 수단이 되었다. 자신들의 의지로 행동을 통제하기보다는 의지를 포기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에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오히려 원하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확실히 중요한 전환이다.
합리적인 시스템이 개인들의 일상생활의 수준을 넘어서 조직이나 제도의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 관료제인데 베버는 그것을 기계라고 불렀다. 의지나 정신을 포기함으로써 본래의 의지나 정신이 원했던 것을 생산해내 주는 합리적인 시스템, 그것은 분명히 기계라 할 만하다.
그러나 자기 관리를 위한 수단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기계가 되면 질적인 차이가 생겨난다. 마르크스는 기계와 노동 수단을 혼동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기계는 더 이상 노동자의 활동을 대상에 전달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노동자야말로 기계의 작업을 돕고 관리한다는 것이다. 노동수단과 노동자의 관계에서 생산자는 노동자이지만 기계와 노동자의 관계에서의 생산자는 기계다.
이러한 구분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기계로서의 관료제 사회가 사회를 지배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생산적이고 능동적인 인간은 사라진다. 생산하는 것은 관료제로 불리는 기계다. 인간 역시 기계의 생산 작업에 동원되는 부속품일 뿐이다. 소명 의식에 불타던 근대인은 언제부턴가 주어진 절차와 규정에 의거해서 수동적으로 일 처리에 동원되고 있는 암울한 근대인으로 돌변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