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시인추방론 - 시대적 배경, 의의
왜 플라톤은 국가에서 시인들을 추방하려고 하였는가?
플라톤 그 자신도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시를 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그가 국가에서 시인들을 추방하려하였을까? 예술을 부정하는 것이었을까?
이러한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우선 시인추방론을 주장한 플라톤에 대해 알아보고 시인 추방론이 나오게 된 아테네의 상황들과 시인추방론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그리고 시인추방론에서 나오게 되는 이데아론과 모방론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고 이러한 시인 추방론의 의의에 대해서 나눌 것이다. 결론에 관하여서는 시인추방론의 의의 밑에 의의들이 가지게 되는 현 시점에서의 의의로 짧게 마무리하는 것으로 대신하게 될 것이다.
Ⅱ 플라톤
아테네 출생. 명문(名門) 출신으로 젊었을 때는 정치를 지망하였으나, 소크라테스가 사형되는 것을 보고 정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인간 존재의 참뜻이 될 수 있는 것을 추구, philosophia(愛知:철학)를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BC 387년경 아테네의 근교에, 영웅 아카데모스를 모신 신역(神域)에 학원 아카데메이아(Akademeia)를 개설하고 각지에서 청년들을 모아 연구와 교육생활에 전념하는 사이 80에 이르렀다. 그 동안 두 번이나 시칠리아섬을 방문하여 시라쿠사의 참주(僭主) 디오니시오스 2세를 교육, 이상정치를 실현시키고자 했으나 좌절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그의 철학의 방향을 잘 말해준다.
시간과 더불어 변하는 일 없이 동일한 것으로서 머무는 영원불변한 것을 플라톤은 이데아(idea:形相)라 불렀다. 이데아는 생성(生成)에 대한 존재, 다(多)에 대한 하나, 타(他)에 대한 동(同)이며, 육체의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고, 영혼의 눈[目]인 이성에 의해서만 관찰할 수 있다. 생성의 세계 가시계(可視界)는 존재의 세계(불가시계)를 분유(分有)하며, 모방하는 데에서만 이에 입각하여 존재하고, 두 세계 사이에는 실물과 그림자, 실물과 모상(模像)의 비례가 있다(《국가론》의 선분(線分) ·동굴 ·태양의 비유, 《티마이오스》의 우주창성론(宇宙創成論) 등).
Ⅲ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이 나온 시대적 배경
시인추방론이 나오게 된 아테네의 시대적 상황은 상당한 수준의 사상과 언론표현의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이 자유는 우리 현 시대에서 정의하고 있는 책임과 의무가 있는 자유가 아니라 자기 멋대로 살 자유였고, 어떠한 구속도 거부하였으며 동시의 평등의 개념도 제시되는데 무차별적인 평등이 만연하였다. 플라톤은 국가생활이든 아니면 개인의 삶이든 일정한 법의 규율 아래 살아가야 할 당위성을 누누이 강조한다. 법이란 ‘바른 이성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당시 시인들을 비롯한 예술인들의 전체적인 여론은 자신들의 고유한 예술론을 퍼뜨렸고 무엇이 정의롭고 적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도 없었다. 원래 예술에는 진리라든지 법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면서 오직 듣는 사람이 즐거움을 느끼는지의 여부가 고려대상일 뿐이라는 생각들이 만연하였고 이는 청중의 지배체제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민주화를 예술 안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곧바로 자유의 과잉을 낳으며 정치적 민주주의의 타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시인들을 모두 소피스트라고 말할 수 없지만 대개는 소피스트들도 그들은 정치적으로 출세하고픈 야망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출세할 수 있는 기법 즉 웅변과 변론술을 가르쳐 주었다.이렇게 시인들이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있던 시기였다.
특히 플라톤이 살았던 기원전 5세기 경 아테네에서 벌어지는 도시 디오니소스 축제는 무엇보다 아테네 시민들의 단합 대회 같은 역할을 했다. 말하자면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축제를 통해서 한국 사람들이 단결하듯, 아테네 시민들은 도시 디오니소스 축제를 통해서 하나로 단결했다. 그 뿐만 아니라 도시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경연되는 비극들은 상당한 교육적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이러한 비극을 보면서 자기가 사는 사회와 자신의 본성에 대해서 눈을 떴다. 그래서 아테네 민주주의 아버지 페리클레스는 축제기간 동안 국가에서 가난한 시민들도 공연을 볼 수 있게 일당을 지급하도록 만들었다. 페리클레스는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자질을 가진 시민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의 성공과 실패는 시민들을 어떻게 교육시키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변동이 없는 엄격한 계급사회를 꿈꾸는 플라톤에게 시민들을 교육시키고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도시 디오니소스 축제나 비극 경연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교육받은 시민들은 통치자에 그저 복종하는 대신 비판의 눈길을 보낼 것이고 축제를 통해 하나가 되었던 시민들은 언제고 정치적인 문제로도 단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Ⅳ. 시인 추방론
1. 시인 추방론이란?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 국가란 엄격한 신분적 질서 아래, 각각의 계급이 자신의 미덕을 충분히 발휘하는 나라였다. 플라톤은 철학자인 통치자 계급, 군인인 방위 계급, 다수의 시민들이라고 할 수 있는 생산자 계급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각의 계급에는 그에 맞는 미덕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통치자가 이성에서 나오는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고 군인들이 기개에서 나온 용기로 나라를 지키고 생산자 계급이 정욕에 빠지지 않고 절제할 때 이상적인 국가인 공화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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