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번상병(番上兵)제도를 바탕으로 한 제승방략(制勝方略)체제
II. 탄금대 전투의 전개
1. 각 군의 장수 및 편제
2. 전장 환경
3. 각 부대의 이동 및 전술
4. 전투의 전개
5. 탄금대 전투의 결과
III. 신립장군부대의 패배 원인
1. 전략의 문제점
2. 전술의 문제점
3. 적에 대한 과소평가
1) 번상병(番上兵) 제도의 실패
- 조선의 군제는 번상병 제도가 근간이었다. 조선과 같은 농업국가에서 농병일치제도를 택한다는 것은 군대의 양성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농업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이기 때문에 노동력의 숫자가 생산량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농업생산에 종사하는 인력을 군사로 차출하게 되면, 생산량의 감소로 이어지고, 미곡 조세를 통한 국가예산 창출도 곤란을 겪기 마련이었다.
또한 병사들의 훈련부족이 심각하였다. 세금으로 납부해야 하는 세미(稅米)를 경작하기에도 바쁜 와중에 무예를 익힌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조선의 장정, 정남(丁男)들은 병역뿐만 아니라 공공사업에도 차출되어 부역에 동원되어야 했다. 이들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소집되어 최소한의 훈련을 마치는 식으로 복구해야 했으며, 농번기에는 마저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또한 군공에 따라 훈장을 수여하기도 하고, 계급과 월급을 올려주기도 하지만, 조선의 정규군은 정병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지도 않았고, 이들이 복무지로 이동하는 동안 사용하는 여비에 대한 보상도 없었다. 설령 군공을 세운다 하더라도 별반 혜택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승진은 극소수의 엘리트 군인 계급인 갑사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조선에서는 수군(水軍)이나 조군(漕軍)과 같은 고된 일에 복무하려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이 일은 일부 계층에서만 세습되는 일로 전락하여 신분은 양민이면서 실질적으로는 천민과 같은 신량역천의 직업이 생겨나기도 했다.
◎ 『한민족 역대 전쟁사』, 전쟁기념사업회, 1992
◎ 임철호, 『설화와 민중의 역사의식』, 집문당(潗文堂), 1989
◎ 김성남,『전쟁으로 보는 한국사』, 수막새, 2005
◎ 『한국전쟁사(韓國戰爭史)』, 육군사관학교(陸軍士官學校), 1987
◎ 『국역 조선왕조실록 CD-ROM』, 조선왕조실록CD-ROM간행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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