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독후 감상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나에게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도, 그래서 낯설지도 않은 이름이다. 내가 전태일을 처음 알게 된 건, 몇 년 전 수업시간이었는데 그때 선생님은 수업 중간에 우리에게 전태일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들려주셨다. 전태일이라는 ‘노동자.’ 정말 가난한 삶을 살았던 그의 청소년기. 그의 감정하나하나 다 적혀있는 그의 수기. 근로 기준법을 외치며 분신자살한 그의 이야기는 그때 나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았다. 모든 게 다 예민하게 느껴지고 조금만 관심을 줘도 자꾸만 생각이 가던 그때의 내가, 지금이라고 해서 전태일의 이름을 잊을 리가 없다.
그리고 지금, 뒤늦게나마 을 읽고 나는 오랜만에 떠올린 그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해본다.
전태일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자식이다. 그런 그가 어려서부터 일을 하고, 자라면서 봐온 현실은 어둡고, 절망감이 가득한 도가니일 뿐이다. 그의 수기에 적혀있는 내용을 보면 너무나도 가난하여 옆에서 도와주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아파온다. 폭음하던 아버지, 돈 때문에 가출과 학업 때문에 상경한 태일, 파출부로 일하는 그의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 현대 사회에서 발로 뛰며 찾아보지 않고서 흔히 볼 수 없는 환경이다. 나는 가난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겪은 가난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너무나도 힘들어서 내일이 오지 않길 바랐던 태일의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 옴을 느끼며 나는 몸서리치며 읽었다.
‘평화시장’ 구로 공단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태일은 저임금과 장시간의 노동, 그리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며 모든 것을 보고 경험하게 된다. 검은 먼지에 뒤덮여 기침을 쿨럭 쿨럭 하고, 일이 많은 날에는 주사까지 맞아가며 밤을 새워 일하는 여공들을 보며 태일은, 그래서 부조리한 노동의 현실을 개선하고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일 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을 위한 법 ‘근로 기준 법’을 공부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와 같은 이름 아래의 노동자들에게 관대하지 못했다. 모든 전태일 들을 매몰차게 내몰았다. 그래서 전태일은 ‘바보 회’를 만든다. 그의 말대로 바보 회는 “우리는 당당하게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살 권리가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태껏 기계 취급 받으며 업주들에게 부당한 학대를 받으면서도 ‘바보’처럼 찍 소리 한번 못하고 살아왔다.”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으나 바보 회의 소문이 퍼져 위험분자로 찍히게 되며 그는 일자리를 잃게 되고 동시에 바보 회도 해체되게 된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애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전태일의 일기 중에서-
그래서 그는 분신자살을 마음먹는다. 그가 자신의 몸에 석유를 끼얹고 근로 기준 법 책에 불을 붙여 자신의 온 몸에 옮겨 붙였을 때, 그는 큰소리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 기준 법을 준수하라!”라고 소리친다. 불길에 온 몸이 휩싸여 뜨겁게 달구어졌을 때도 그의 목적은 단 하나, 더 나은 노동 환경에 있었다.
전태일이 아름다운 청년인 이유는, 그의 희생이 아무런 쓸모없는 자살 소동이 아닌 커다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그의 분신자살은 이렇게 말한다. 노동자들 역시 존중받은 권리가 있고, 부유한 부르주아들이 행하는 구속 속에서 갇혀 지내는 기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은 이유 역시 전태일이 아름다운 청년임에 대한 이유에 포함되어 있다.
전태일은 이제 하나의 문으로만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버거운 인물이다. 그의 모든 행동들이 커다란 혁명이다. 나는 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그가 살았던 환경을 볼 수 있었고 그의 생각들을 같이 공유할 수 있었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던 그의 말. 이제 우리는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오늘 날의 수많은 전태일이라는 이름의 노동자들을, 그리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대해 우리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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