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 - 파수꾼
Ⅰ. 들어가며
인간은 누구나 일상적 인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여기서 인력이란 인간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맺고 끊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단지 상처를 주고받는 아이들의 드라마가 아니라 미시적 관계망에서 발버둥치는 현대인들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팽팽하게 연결된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관계를 끊고 모두 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뉴스에서 종종 듣고는 하는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한다면 좀처럼 행동의 근거가 되는 점들을 이야기 속에서 분명하게 짚기 어려울 것이다. 이 영화는 미스터리 구조를 바탕으로 어떤 진실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진행되지만 잘 짜여진 치밀한 서사 전개가 아니라 인물들 간의 관계와 그 관계에 변화를 일으키는 감정 상태를 끈질기게 열거하여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Ⅱ. 일상적 관계에서의 소통
은 청소년을 내세우는 다수의 영화들이 다루고 있는 사회에 대한 반항이나 기성세대와의 충돌에서 벗어나 인물들 사이의 관계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기태와 희준, 동윤은 보통의 고등학생이 살아가는 삶의 테두리에 속해 있으면서도 소년으로서 기능하기 보다는 인간으로서 사고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꼭 특정 연령대를 염두 해 두고 사건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관계를 맺고 끊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똑같이 보여주고 있다. 이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미성숙한 아이들의 삶을 다룬 성장영화나 사회의 축소판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 같은 학교물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이 이 영화만의 특징이다.
기찻길 옆에서 야구를 하고 연애 사업까지 공유하면서 절친으로 지냈던 그들이 왜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됐을까? 시놉시스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단지 편부 슬하에서 자란 기태가 고등학교 진학한 뒤 엇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에 균열이 일었던 것일까? 기태가 희준에게 처음으로 발끈하던 때를 유심히 살펴보면, 사실 희준이 기태의 콤플렉스를 건드렸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럴 의도가 있었는지조차 의문이다(영화에서는 정확한 사실 여부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기태는 자신 몰래 눈빛을 주고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희준을 오인한다. 바로 그 지점부터 영원할 것 같았던 그들의 관계는 서서히 오해와 의심으로 얼룩진다. 말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기태가 희준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을 놓고 또 다른 친구 동윤이 기태에게 불만을 품는 것으로 이어진다. 얼마 후 희준은 전학을 결심한다. 더 이상 화해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희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기태는 기태대로, 두 친구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동윤은 동윤대로 각자 불씨를 키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로에게 진심으로 충고를 한다며 내뱉은 말들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동윤의 여자친구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을 들었다며 기태가 이야기를 꺼낼 때, 영화 속 오인은 더 증폭될 것이며 그들의 관계는 곧 무너질 것임을 우리는 직감한다. 동윤은 이전부터 그 나쁜 소문을 알고 있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결국 여자친구 앞에서 태연하게 굴지 못한다. 이후에 영화는 여자친구가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을 잠깐 비추더니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동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그의 발을 따라 기태에게로 간다. 동윤은 그 사실(동윤에게 나쁜 루머를 알려줬다는 것, 혹은 소문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여자친구에게 말했느냐며 기태에게 따져묻는다. 그 사실이 무엇이든 기태는 극구 부인한다. 그렇게 생각할 만큼 우리의 우정이 이렇게나 하찮은 것이었냐며 오히려 화를 낸다. 결국 그들은 싸운다. 시간이 지나 기태가 과일 바구니를 하나 사들고 동윤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동윤은 기태와의 관계를 매정하게 끊어버린다. 친구로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잔인한 말과 함께. 일련의 일들로 곁에 있었던 친구들이 모두 떠나자 기태는 자살을 한다.
그들은 단 한번도 진실을 알지 못한다. 영화는 끝까지 진실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니까. 희준의 일도 그러다하다. 세 친구는 서로의 고민과 불만을 속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한다. 오해는 오해를 낳고 의심은 의심을 낳는다. 그리하여 세 친구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의 파멸을 맞는다.
1. 주체의 탈주욕망
우리 사회의 미시적 인간관계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가령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포함한 가부장적 사회의 모습, 규율을 강요하는 사회의 모습, 타인들의 시선을 느낀 인물이 스스로 자신을 검열하는 모습 등이다. 그중에서도 이 영화는 많이 언급되었던 사회성의 문제를 떠나 타인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인물들을 그리는 데 중점을 둔다. 이는 영화에서 핵심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 기태와 동윤이 늦은 밤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회상씬에서 “넌 너무 남한테 신경을 많이 써”라며 기태에게 충고하는 동윤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점이 이 영화를 비슷한 시기의 아이들을 다루는 과는 또 다른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규율을 강요하는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며 아이들뿐만 아니라 기성세대, 나아가 사회 전반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과는 달리 에서는 아들의 죽음을 뒤밟는 아버지의 역할이 미미하고 거칠게 행동하는 아이들을 제어해야 마땅한 선생님조차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절친한 관계 앞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약점을 감추며 나름의 콤플렉스를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지 못하게 스스로를 규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주먹깨나 쓰는 친구에게 머리를 굽히고 있다고 생각하는 희준도, 주변 친구들에게 해를 끼치는 모습에 폭발하여 기태에게 악담을 내뱉는 동윤도, 심각한 치부라도 갖고 있는 것처럼 학교에서 대장으로 군림하려드는 기태도 모두 일상의 힘에 의해 서로를 당기고 밀어낸다. 희준은 자기가 좋아했던 여자아이가 기태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에 대한 은밀한 질투심이, 동윤은 희준과 자신의 여자친구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일종의 죄책감이, 기태는 엄마의 부재라는 콤플렉스와 자신의 속내를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는 친구들(그에게 친구는 우정 너머의 존재로 작용하는 듯하다)에 대한 치명적인 불소통이 가각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결국 그런 문제들은 힘의 강약에서 비롯되는 것이었기에 원만하게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해만 증폭시키다 일을 그르치게 된다. 그래서 기태의 죽음은 그가 속한 관계망에서 소통을 갈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주체의 탈주 욕망이다.
Ⅲ. 나오며
영화는 보통의 고등학생을 다루면서도 사회의 범주에서 인간들이 무엇에 의해 어떻게 행동하는지 적나라하게 제시하고 있다. 갈수록 긴장감이 커지다가 기태와 동윤이 주먹을 휘두르며 묵혀두었던 감정을 마침내 한꺼번에 폭발시키는데도 혹시 무언가 영 개운치 않았다면, 그것은 아마 시종일관 궁금했던 몇 가지 의문에 대한 진실이 영화가 끝날 때 까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기태의 아버지를 따라 밟는 미스터리 구조는 결국 관객이 영화에 대해 오인하게 만드는 하나의 장치로도 작용한다. 그것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이들에게 어떤 진실이 중요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고 있으며, 그들과는 달리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른이기 때문에 어설프게 일을 저지른 아이들의 사건을 잘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준다. 그러나 영화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형식도 아니었고 숨겨진 진실을 밝히는 것도 중요치 않으며,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존재(파수꾼)도 등장시키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가 이 영화를 따라가는 방식과 비슷하게 인간은 누구나 관계를 맺을 때 필연적으로 오인과 의심을 거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끊임없이 자신을 검열하고 타인과 사회를 경계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세상 모든 인간은 스스로를 외롭게 지켜야 하는 그 자체로 ‘파수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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