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감
1. 머리말
기시감은 이재창이라는 작가의 첫 소설이다. 그는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으며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 것도 아니다. 이 글은 수년에 걸쳐 통신상에 연재된 것을 책으로 묶어 출판한 것이다. 아직 그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원숙기에 접어든 것도 아니거니와 이 소설도 아직 공부가 부족한 내 눈에도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아 눈에 밟히곤 하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러한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분명히 누군가에게 추천할만한 것이다.
부족한 점들 사이에서도 돌출되어 이 소설을 추천할만한 것으로 만드는 요소들에 대해, 그리고 이 작품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해 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한다.
2. 대상의 인식을 위해 필요한 것은 비교
2.1.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장편 과학소설
과학소설이란 장르는 국내 문학계에서는 죽은 장르다. 공상소설이란 딱지가 붙어 사람들의 머릿속에 환상만을 불어넣는 저급한 문화라는 낙인이 찍혀 그 외의 다른 시각으로 조명 받을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세기 말, 통신과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공상소설의 작은 갈래로 역시 통속적인 문학의 딱지를 때지 못하던 판타지 장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다행스럽게도 환상문학은 이 사회 출판시장에 또 하나의 영역을 만들어내며 사회적 문화 코드로 인정받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도 과학소설장르는 수면에 올라오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판타지와 같은 것이 아니냐는 오해조차 사고 있다.
이는 SF란 단어의 한역에서 오는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Science Fiction이라는 외국어를 지금까지 우리는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단어로 번역해왔다. 하지만 저 원어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공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이는 지금까지 한국 문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리얼리즘 소설의 시각에서 볼 때 “헛된 망상”일 뿐이라는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학소설은 결코 헛된 망상이 아니다. 이 장르는 과학이라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 물론 작품 내에서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과학기술도 등장하며 이는 분명 망상으로 보일 여지를 가진다. 하지만 라이트 형제 이전에 누가 감히 인간이 하늘을 난다는 것을 현실이라 생각했으며 아인슈타인 이전에 시간이 누구에게나 공정하지 않고 다르게 흐를 수 것을 어느 누가 상식으로 받아들였겠는가? 과학소설에 등장하는 과학기술은 비록 가공의 것이나 귀신이나 유령과는 달리 철저히 현실의 과학을 기반으로 하여 이러한 발전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하나의 시도다. 이는 그 내부에 논리를 가지지 않는 판타지의 마법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며 이를 단순히 공상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과학소설의 본질을 보지 않으려는 무지의 소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순히 과학소설이 이러한 한역명의 문제로만 인해 수면 아래에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과학소설이 좀처럼 나오지 않으며 설령 나온다 할지라도 대다수가 단편에 머무르는 상황에서 장편소설이 출판된 것은 한명의 과학소설 애호가로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더군다나 이 소설이 단순히 과학소설의 탈을 쓴 흔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순수 과학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과학소설에서만 가능한 등장인물을 통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한 서양 철학의 인식론에 대한 고찰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하급문화가 아닌 상급문화를 지향하는 이 소설은 분명 한국의 과학소설 인식에 한 전환점으로 기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2. 물리적 실체와 인식
이 소설에서는 다른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바로 인간이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낸 지성, 인공지능이다. 그들은 인간과 다른 물리적 실체를 가진다. 거대한 우주선이나 극도로 작은 나노머신을 신체로 가지며 뉴런구조로 이루어진 뇌 대신 인간은 인식조차 하지 못할 찰나의 순간에 수많은 가능성을 그려내는 입자컴퓨터를 연산에 활용한다.
당장, 로가디아의 시간은 인간과 다른 종류의 관념이다. 너무나도 둔감하고 보잘것없는 육체를 지녔기에 시간의 개념을 흐름으로 인식하는 인간에 비해, 그녀에게 시간은 양자적으로 가능한 무한히 짧은 사건들의 무수한 배열일 뿐이다. 로가디아에게 시간은 흐름이 아니라 순서에 불과하다. 사건 역시 일어났기에 의미를 갖는 인간과 달리 로가디아에게는 모든 사건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런 로가디아에게 어떤 일이 언제, 왜 일어났는지를 물어보는 행동은 무의미하다. 육하원칙이라고 불리는 법칙은 오직 인간에게만 유효한 관념이다.
작중에서 작가는 인간과 다른 물리적 실체를 가진 존재의 시간 인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가 사고하고 인식하는 방법을 묘사하는 것을 통하여 비교대상이 되는 인간이 가지는 시간의 인식에 대한 고찰을 시도한다. 과학소설이기에 가능한 새로운 유형의 등장인물과 그가 가지는 독특한 개성이 이 소설이 가지는 매력이다.
인간과 다른 물리적인 실체를 가지기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시간관만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가지는 물리적 실체로는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인간의 존재는 물리적 실체에 구속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이 되어 본 적이 없는 존재가 어떻게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손이 없고 코가 없는 존재가 어떻게 겨울의 찬바람 한가운데 서서 손가락 끝에서 부서지는 낙엽의 냄새를 이해할 수 있을까? 폐가 없고 심장이 없는 존재가 어떻게 한숨의 의미를 알고 기쁨의 흥분에 심장이 뛰는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