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나는 역사소설을 좋아한다. 박제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혹은 사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은 역사소설은 마음을 경건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역사소설을 두고 ‘좋아한다.’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외세로부터의 침략과 신분의 한계로 점철된 한(恨)의 역사는 좋아하기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잖은가. 현재 대학의 수업에는 우리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과목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영어’란 것은 필수 과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기현상 속에서 역사소설은 내가 한국인임을 확인하게 하는 유일한 도구다. 이러한 의미로 역사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마치 대단한 애국자라도 되는 듯 여기면 곤란하다. 생각해보면 나라를 생각한 때는 군복무 당시와 월드컵 기간, 그리고 역사소설을 읽을 때가 전부니까 말이다. 이제 군복무는 끝이 났고, 월드컵도 4년에 한번이 고작이니, 역사소설을 읽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를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 여겨진다.
도서관에 가면 새 책들 사이에서 유독 낡고, 닳은 책이 있다. 바로 조정래의 , 이다. 두 책을 읽으며 지낸 날은 하루 종일 그 책에 빠져있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국사 교과서에서 그저 달달 외던 사건들이 구체적 인물을 통해 형상화 될 때 내 가슴은 뛰었고 또 울었다. 그렇게 난 에 에 매료되었고, 작자인 조정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몇 년 전 텔레비전에서 조정래의 삶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조명해 놓은 것을 본적이 있다. 글을 쓰는 동안 팔다리에 마비가 오고, 작품 완성 후 입원을 하는 등, 온갖 고통을 참아내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인(匠人)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시험기간이랍시고 도서관에 앉아 있다가 금방 실증이 나서는 화장실이나 들락거리는 한심한 모습이 아닌가. 이런 내가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영광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평소 존경하는 사람을 물으면 그냥 이순신 장군이라고 대답하곤 했었는데, 앞으로 작가 조정래를 존경한다고 해야겠다. 조정래의 작품은 보다 천천히 놓치는 것 없이 읽으려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 그가 쓴 수많은 원고지를 생각하면 절로 머리가 숙여 진다. 이런 마음이 존경이 아니고 무얼까.
조정래의 작품 중 가장 최근에 읽은 것이 바로 이 장을 통해 추천할 장편 이다. 은 제목 그대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팔만
대장경은 초등학생 이상만 되면 누구나 아는 것이다. 해인사에 안장되어 있으며, 불경을 담았다는 것 까지 말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팔만대장경의 전부다. 이렇듯 누구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또한 모르는 것이 바로 역사가 아닐까? 이런 것을 글의 소재로 삼았다는 것에서 조정래에게 일종의 고마움까지 느낀다.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평생 팔만대장경에 대해 조금의 관심과 애정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팔만대장경으로 알려져 있는 ‘해인사고려대장도감판대장경’의 조성과정이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이 대장경의 조성작업을 앞서 이끈 사람은 고려 고종조 무신 정권의 실력자인 최우였다. 현종 때 조성되어 대구 부인사에 수장되고 있던 초조대장경이 1232년 몽골군에 의해 불타 없어지자, 최우가 새로운 대장경의 조성에 앞장섰던 것이다. 몽골군의 침략을 불심으로 막아보고자 했던 것이 다소 엉뚱해 보이기도 하다. 이는 하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조상들의 지극히 수동적인 삶을 보여준다. 바꿔 말하면 의지할 곳 없는 현실의 발로라 하겠다. 자신의 인생을 하늘에다 맡길 수밖에 없었던 민족의 안타까움을 이 소설은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간절함에 의해 탄생한 것이 팔만대장경이다. 여기서 간단히 당대 최고의 문장가 이규보가 쓴 ‘대장경(大藏經)판각(板刻)군신기고문(君臣祈告文)’을 살펴보겠다. 이를 통해 팔만대장경의 제작 의도를 알 수 있다.
몽골병의 환란은 몹시 가혹하오이다. 그들의 잔인하고 흉악한 본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어리석은 어둠이 짐승보다 더 심하오니, 천하에 가장 소중한 불법이 있는 줄을 어찌 알리이까. 그 더러운 발자국 지나가는 곳마다 불상과 경전을 모조리 불살라 버리오매, 부인사에 모셔 두었 던 대장경 판본도 마침내 불살라 버리고 말았나이다. 수십년 공적이 하루아침에 재가 되어 나라 의 큰 보배가 없어졌사오니 모든 불보살과 여러 천왕의 대자대비하신 마음인들 이 일에야 어떻 게 참을 수 있겠나이까. ....... 그리하여 지금 대소 재상과 문무백관들과 함께 큰 원을 세우고 주관하는 관청을 두어 한편은 공사를 시작하였나이다. 처음 대장경을 판에 새기던 연유를 상고 하온즉, 현종 2년에 거란병이 침입하매 현종께서 남으로 피난하셨으나 거란병은 물러가지 않고 머물러 있으므로, 그때의 임금과 신하가 대장경을 판에 새기기로 크게 서원하였삽더니, 그 뒤에 거란병은 곧 스스로 물러갔나이다. ....... 저희들의 오늘날 정성이 그때 군신들의 정성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사오니 전쟁이 쉬어 온 나라가 화평하고 모후와 태자의 수명이 길며, 나라의 운이 길이 만세에 태평케하시고 불법을 밖으로 두호하오며, 부처님 은혜에 조금치라도 보답하려 하나 이다. 저희들의 간절한 소원을 굽어 살피시오서.
최우를 비롯한 수기대사, 근필, 정장균 등이 작품을 전개하는 주요 인물이다. 최우는 앞서 언급했듯 무신 정권의 실력자였고, 수기대사는 산도적도 충성할 만큼 깊은 불심을 가진 승려다. 이에 비해 근필과 정장균은 보잘것없는 신분을 지니고 있
다. 근필은 대대로 목수 집안이었으며, 정장균은 몰락한 지식층의 자손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진짜 감동은 이들 비(非)권력자로부터 온다. 그 중 근필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근필은 태생이 천하여 성씨도 없이 그저 근필이다. 부인사에 몽골군이 쳐들어 왔을 때 유일하게 살아남아, 부인사 주지의 사리를 가지고 도망쳐 나온다. 홀로 살아남았음을 죄로 여겨 팔만대장경을 보관할 판전을 홀로 떠맡아 짓는다. 신과 소통하듯 목숨 걸고 일하는 근필은 대대로 내려오는 판전 공사의 염원을 이루어내고 결국 숨을 거둔다. 성씨도 없는 천한 출생이지만, 과업을 이으려는 그의 집념은 신분제도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근필이 제작한 판전에 봉안될 팔만대장경을 제작하는 과정은 한마디로 인고의 과정이다. 간단히 소개하고 싶으나, 도저히 간단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직접 읽어보고 가슴 깊이 느껴보기 바란다. 다만, 우리의 미흡한 상상력으로는 그 과정을 감히 짐작할 수 없을 것이란 것만 알아두길 바란다.
난 을 읽으며 두 번 눈물을 글썽였다. “거짓말 하지 마.”라고 할지 모른다. 요즘 세상에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다니, 게다가 역사소설을 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하는 참말이다. 대장경판을 새기는 ‘각수’일을 맡고 있는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부고를 알리기 위해 온 아들. 부자의 상봉 장면에서 왜 눈물이 났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가족의 정도 버리고 나랏일에 전념해야 했던 각수의 인생이 서글퍼서? 전혀 아니다. 어미 잃은 자식이 가여워서? 역시 아니다. 이상하게도 부자상봉의 장면에서 나의 아버지의 축 쳐진 어깨가 떠올랐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아버지와 아들간의 정(情)이란 게 금기 혹은 무시되어 왔다. 하지만 그를 발견했을 때 감정이 동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한 번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 것은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였다. 앞서 언급한 근필의 죽음이 바로 소설의 결말이다. 판전을 완공하고 죽음의 문턱에 이른 근필을 부여잡고 수기대사는 오열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유치하게도 눈물이 났다. 대장경에 얽힌 조상들의 혼을 바친 모습에 감동했다고 하면 정말 유치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당장 해인사로 가 팔만대장경을 향해 절이라도 하고픈 심정이었다. 이러한 감동을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느꼈음 한다.
얼마 전 독도 영유권을 두고 일본과 큰 마찰이 있었다. 을 읽으며 독도와 참으로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팔만대장경도 독도도 당연히 우리나라의 것이라는 위험한 안심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단지 그뿐이다. 정말 우리의 것이라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에 대해 알아야 한다. 지금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하나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누구나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저 보았을 뿐이지 보고나니 느낌이 어떠했다는 없다. 심지어 독도는 한번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대다수다. 역사를 시간 내어 공부하기 어렵다면 역사소설을 읽어라. 그
리고 시간 내어 독도를 가보라. 그 때 비로소 독도는 우리 땅이고, 팔만대장경도 우리 것이다. 2000년 겨울, 독도를 눈앞에서 본 적이 있다. 당시 독도는 미칠 듯 추웠지만, 지금 내 맘속에선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을 읽을 때도 그러했다. 그것이 애국심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느껴보길 바란다.
사실 이 모든 것은, 팔만대장경에 얽힌 짧은 역사적 기록을 뼈대 삼아 허구적 사건을 가미한, 말 그대로 소설이다. 또한 역사는 해석하기에 따라 일부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모든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 속삶을 완전히 무시하고 거짓이라 할 수는 없다. 우리 주위에 있는 문화재가 역사의 증거고, 우리 자신이 증거이며, 한국이라는 이 나라 전체가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역사소설은 곧 국사 교과서다. 적어도 초, 중, 고등학교의 그 딱딱한 돌 같은 교과서보단 더 가슴으로 와 닿는다. 하루종일 웽웽거리며 방안을 돌아다니는 파리가 있고, 소설책 이 손에 들려 있다한들, 맨손으로 파리를 잡았으면 잡았지 책으로 내려치진 않을 것이다. 이렇듯 역사소설은 사소한 생활 곳곳에서, 내게 소중한 의미를 가진다. 역사소설은 타임머신이다. 겁내지 말고 따라오라. 을 비롯한 많은 역사소설 속에는 우리의 조상이 숨 쉬고 있다. 책을 펴고, 그들을 만나보자,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외치자 대한민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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