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말 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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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타인에게 말 걸기
‘타인에게 말 걸기’라는 책은 그 제목부터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2주전쯤 1년 넘게 활동한 동아리를 탈퇴하면서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예전처럼 이어지지 않을까 내내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한 걱정은 나와 지금까지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생각하게 했다. 사람과의 관계란 정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인 것 같다. 복잡한 머리와 답답한 마음으로 접한 은희경의 소설은 책장을 넘기면서 책 제목에서부터 느낀 편안함이 어떠한 편안함 이었는지 차근차근 이해시켜 주는 듯 했다. 나는 이 책에 수록된 아홉편의 소설 중에서 책 타이틀과 동일한 「타인에게 말 걸기」를 읽어 보라고 권유 하고 싶다. 타인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타인에게 말 걸기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 깨달았으면 좋겠다. 타인과의 진실한 관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소설을 한번 읽어보았으면 한다.
은희경의 작품은 사랑에 메마른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 나갈 것인지를 생각 할 수 있고, 작품 속 등장인물을 통해 과연 자신은 어떠한 사람인가를 한번 되돌아 볼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은희경 소설의 사랑은 그저 애틋하기만 감정으로 둘러싸였다는 말랑거리는 낭만도, 기대감도 없는 것 같다. 그러함은 그녀의 소설「타인에게 말 걸기」에서 더욱 깊게 나타난다. 타인…그 배타적 언어. 타인에게 말 걸기란 나와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내가 상대를 향해 다가선다는 뜻이다. 그 소통에 친밀감을 얹거나, 냉담함을 선택하는 등의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을 건다는 것과 그에 대응하는 것은 서로 반대편의 서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작품 속 주인공은 타인을 이해 한다는 것은 결국 그에게 편견을 품게 되었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또 타인과의 관계에서 할 일이란 그가 나와 어떻게 다른지를 되도록 빨리 알고 받아들이는 일뿐이라고 한다. 여기서 나는 생각해 본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그들은 나와 어떻게 다른지... 나는 그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으며 그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해 소설 읽는 내내 생각해 보았다.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무언가 허무하다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은희경이 그려내고자 하는 타인과의 관계는 어떠한 관계 일까? 끊임없이 타인에게 말을 걸고자 하는 ‘그녀’, 타인을 대하는 그녀만의 이상한 소통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공 ‘나’. ‘나’는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것을 싫어한다. 타인이 자기 삶에 개입되는 것 못지않게 자신이 누군가의 삶에 개입되는 것을 번거롭게 여긴다. 나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피곤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기적인 생각이다. 단지 내가 상대방 때문에 손해 보는 것 같고, 그 사람이 나에게 간섭하는 것이 귀찮다고 여겨질 때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생각각들이 마음에 하나 둘씩 쌓여서 어느 순간 마음을 닫아버리게 되는 것 같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점점 개인적으로 변하고 있다. 아니, 벌써 개인적으로 변해있다. 이러다 타인과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존재임을 알기에 그런 생각을 잠시라도 떠올린 순간이 무섭다. 현대인들은 세상에 마치 혼자인 것처럼 살아간다. 외롭고 허전하고 쓸쓸해 보인다. 자신은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슬퍼 보이고 허전해 보인다. 역시 사람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동물인 것 같다. ‘그녀’가 비록 이해할 수 없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고 끊임없이 말을 걸고자 했던 것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겉으로는 냉정하게 살아가지만 그 내면은 타인에게 너무나 말을 걸고 싶어 하는 ‘그녀’의 모습을 담고 있지 않을까?
‘그녀’가 직장동료 관계인 남성 작중화자 ‘나’에게 끈질기게 걸어오는 ‘전화’에서 짐작이 가듯이, 그리고 작중화자가 알려주는 그녀의 몇몇 일화들에서 완연히 드러나듯이, 그녀는 타인과의 소통과 친교에 대한 간절한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 작중화자는 그녀의 인상에 언급하면서 “검고 깊은 구멍처럼 벌어져” 있는 그녀의 텅 빈 눈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남성이라는 타인에 대한 욕구를 솔직히 드러내는 그녀의 행동은 타인과 얽히는 관계를 번거롭게 여기고 단조로운 개인적, 일상적 생활에 자족하고 있는 작중화자에게는 이해하기 어렵고 부질없이 돌출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황당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일련의 행동들은 예외 없이 사람의 선의와 사람 사이의 유대를 천진하게 믿는다는 특징을 띤다. 호감을 느끼고 있던 직장 상사에게 그녀의 감정을 표시하려고 무리하게 술병을 나르다가 넘어져 얼굴을 다치는 바람에 생긴 흉터는 그녀가 지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순정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작중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그녀는 남자들에게 배신과 우롱을 당하면서 갈수록 참담한 신세가 된다. 예컨대 간밤의 사랑 없는 정사의 흔적이 남은 흐트러진 몰골을 하고 이른 새벽 길가에 나와 손가락에 정액으로 말라붙은 휴지를 이빨로 긁어대는 젊은 여자의 모습이 그녀와 관련하여 작중화자에게 기억되는 장면에서 그녀의 처지는 실로 애처롭게 느껴진다. 이처럼 타인에게 신뢰를 걸고 있으며 바로 그것 때문에 상처를 입는 그녀의 불행을 통해서 나는 인간관계의 냉혹한 현실에 접할 수 있었다. 그것은 현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근본적으로 타인에게 무심한 개인들 간의 형식적인 혹은 기만적인 관계임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타인에게 말 걸기」가 비록 사랑에 대한 완전한 절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사람들 사이의 진실하고 친밀한 소통이 이제는 사라진 행복임을 직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사라진 행복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주위사람들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고 사라진 행복을 되찾아 사람들 사이의 진실하고 친밀한 소통을 회복했으면 한다.
은희경은 사람 사이의 끈끈한 유대가 사랑과 결혼이라는 가장 친밀하고 사사로운 영역에서 조차 사라졌음을 지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상실을 벌충하려는 어떠한 낭만적 기획도 꿈꾸지 않는다. 「타인에게 말 걸기」에서는 사랑의 환상이 여성에게 초래한 불행을 극히 냉담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작중화자가 사랑을 탐하는 인물을 무감동하게 관찰하고, 그들의 희극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는 사실은 그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다음은 작품을 읽으면서 내 마음이 정리되었던 한 부분이다.
“그 때 말야."
그녀의 검은 눈이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그 때 산부인과에 따라가 달라고 처음 찾아갔을 때, 왜 하필 너였는 줄 알아?"
"왜 그랬는데."
"네가 친절한 사람 같지 않아서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