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 용두산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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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용두산 공원
◎ 용두산 공원 (龍頭山公園)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에 있는 공원으로 부산의 지방기념물 제25호에 속한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바다가 보인다 하여 송현산(松峴山)이라 하였다가 임진왜란 후 용과 같은 산세가 왜구들을 삼켜버릴 기상이라 하여 용두산 이라했다. 8·15광복 前에는 일본인들이 용두산 신사(神社)를 세우고 공원으로 조성.
6·25전쟁 직후에는 피난민들이 산꼭대기까지 판잣집을 지었는데 두 차례에 걸친 대화재로 민둥산이 되었으나, 자유당 시절 이승만 대통령의 80회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호를 따 우남공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대대적인 녹화사업이 진행되었다. 지금은 척화비 ·충혼탑 ·4·19의거기념탑 ·충무공이순신의 동상 등이 있고, 부산타워가 세워졌다. 부산타워(120M)를 오르게 되면 시가지와 항구의 전경은 물론 맑은 날에는 멀리 일본 대마도까지 보이는 곳으로 부산을 찾아온 국내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 작품 속 용두산 공원
최영철 시인은 에서 용두산 공원을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청춘남녀들의 최적의 데이트코스라고 말한다. 그 시절 용두산 공원이 데이트 코스로 즐겨 선택되었던 이유는 얄팍한 주머니 사정 때문이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세대들이 자주 접할 수 있는 미팅이란 것이 흔치 않았고 채팅도 없었기 때문에 남녀 간에 서로 얼굴을 마주하여 쑥스럽게 앉아있는 걸 어려워했다. 그래서 나란히 걷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 여겼다. 지금의 연인들은 마주 앉아 서로 눈만 맞추고도 몇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그때의 연인들은 묵묵부답 말없이 공원길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이심전심 마음이 통해 다시없는 사랑을 이루기도 했다.
지금의 청춘남녀들은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크게 대수롭지 않은 일상처럼 반복되지만 그 시절은 만나기도 헤어지기도 쉽지 않았다. 혼자의 힘으로 하늘이 점지해주는 우연에 기대 짝을 찾아야 했다. 이처럼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사랑이었으니 얼마나 설레고 두근거림이 오죽했을까.
용두 산아 용두산아 너만은 변치 말자/한 발 올려 맹세하고 두발 딛고 언약하던/한 계단 두 계단 일백구십사 계단에/사랑 심어 다져놓은 그 사람은 어디 가고/ /둘이서 거닐던 일백구십사 계단에/즐거웠던 그 시절은 그 어디로 가버렸나/잘 있거라 나는 간다 꽃 피던 용두산/아~용두산 엘레지
-고봉산 작사 작곡 노래의 中
고봉산 작사 작곡 노래의 의 노랫말에 나오는 194 계단은 연인들의 사랑 성취를 위해 딛고 가야할 194개의 기나긴 고비를 말하고 있다. 이 계단을 오르는 연인들은 아름다운 사랑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내딛었을 것이다.
예전의 일백구십네 개의 계단은 지금 에스컬레이터가 들어서서 연인들이 딛고 가야할 과정을 모두 무시하고 순식간에 공원 앞까지 실어 나르고 있다. “나란히 손을 잡고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는 지금의 연인들은 행복해 보이기는 하지만 너무 순조로운 동행인 것 같아 위태롭게 느껴지기도 한다.”라고 표현.
▲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어 용두산 공원 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의 모습.
◀ 광복동에서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