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
1. 개화사상의 발생
2. 개화파의 형성과 활동
(1) 개화파의 형성
(2) 개화파의 활동
3. 갑신정변
(1) 갑신정변의 배경과 전개
(2) 갑신정변의 영향과 의의
결론
같은 역사를 바라보는 남한과 북한의 시각 차이를 알아보는 것은 북한의 역사연구를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남북한 개화사상 연구를 비교해 봄으로써 좀더 다각적으로 조선의 근대화 개혁을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론
1. 개화사상의 발생
북한의 조선전사(이하 북한)에서는 19세기 중엽 조선이 봉건제도의 심각한 위기에 처했으며, 자본주의적 요소의 장성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부르조아지는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새로운 선진사상의 출현을 요구하여, 이에 봉건제도를 청산하고 자본주의제도를 세울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부르조아지사상조류로서의 개화사상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개화사상이 조선내부의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발생하였다는 것인데, 남한의 한국사(이하 남한)에서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개화사상의 발생을 보고 있다. 19세기 중엽 서양세력의 침입(제너럴셔먼호 사건과 병인양요)으로 말미암아 조성된 민족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사상의 하나로 개화사상이 발생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개화사상이 외세의 타격에 의해 발생하였다는 외세 의존적인 성격이 부합된 것으로 북한의 발생 원인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원인으로 발생하였지만, 개화사상은 오경석ㆍ유홍기ㆍ박규수에 의해 연구되고 발전되었다. 그들은 개화사상을 실천하여 나라를 크게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고, 이를 위해서 북촌의 영민한 양반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시작했다. 이들의 가르침을 받아 개화사상을 형성한 대표적 인물로는 김옥균ㆍ홍영식ㆍ박영교ㆍ박영효ㆍ서광범ㆍ김윤식ㆍ유길준ㆍ김홍집 등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38』, 탐구당문화사, 1999,
과학원 역사연구소,『조성통사(하)』, 오월, 1989
金玉均, 「甲申日錄」, 1884년 12월 1일, 『金玉均全集』, 아세아문화사판,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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