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도시
1. 들어가며
인간은 시공간적 존재이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표 공간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 시간과 더불어 공간은 개인 또는 사회라는 인간 생활을 규정하는 존재적 기반이며 인식적 준거가 된다. 최병두, 『근대적 공간의 한계』, 삼인, 2005, 5쪽.
사회적 공간이건 개인적 공간이건 공간은 그 공간만의 개성을 지니고 있다. 도시는 자본주의적 소비문화가 반영되고 하늘색을 좋아하는 아이의 방엔 그 아이 취향이 반영된다.
소설에서 유리가 추락하는 서울이라는 공간이 나온다. 공간을 살펴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는가.
2. 유리추락사고의 비밀
사회적 공간은 사회적 사물과 사건들로 충만한 공간이다. 따라서 사회적 공간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현상들과 분리되어 이해할 수 없다. 앞의 책.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소설의 주 무대는 서울이라는 공간이다. 서울은 높은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높은 건물은 수천수만 개의 유리를 매달고 있다. 서울에서 대형 유리들이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재해방지대책본부 소속 이윤찬과 도심테러격파본부 소속 정남중이 사고 현장으로 달려온다. “재해와 테러의 구분이 모호한 사건이 일어나면 둘은 현장에서 함께 감식”하기 때문이다. 첫 사고는 유리추락사고가 재해 때문인지 테러 때문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이 사고로 거리를 지나가던 무고한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심각한 상황인데 도심테러격파본부 소속 정남중은 “전문가가 오셨으니 해결해주셔야죠. 전 이렇게 쪼그리고 앉아서 뭐 찾아내는 건 딱 질색이잖아요.” 라며 유리가 자살했다는 농담을 던진다. 그 뒤로 대형 유리가 추락하는 사고가 계속 일어난다. 유리추락사고의 가장 무서운 점은 유리가 조용히 떨어져 아무도 유리가 떨어지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유리가 지면에 닿아야, 사람이 다치고 나서야 알 수 있다.
창문이 있던 자리는 깨끗하고 충격을 받은 흔적도 없었고, 칼로 도려내거나 뜯어낸 흔적도 없다. 작은 실마리조차 없으니 이 사고는 재해인지 테러인지 계속 모호한 상태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유리추락사고를 비중 있게 다뤘다. 전문가 여러 명을 스튜디오에 초대해 집중토론을 벌이기도 했고, 어떻게 걸어야 추락하는 유리로부터 안전한지, 몸에 유리파편이 박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룬 프로그램도 급하게 만들어 방송했다. (p101)
유리가 추락하지 않는 방법, 즉 예방차원을 논의해야 하는데, 유리가 추락한 이후의 대책 상황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서울에는 수많은 유리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만큼 위험이 높은데 사람들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한 실험에서도 떨어지는 유리를 피하기는 힘들다는 결과가 나왔는데도 최대한 붙어서 걷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한다. 이것이 과연 가장 안전한 방법일까.
유리추락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이윤찬은 ‘걷기 좋은 도시 만들기 건축가 모임’의 창립자이자 유리건축의 일인자로 불리는 하성우를 만난다. 사람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하성우는 근거 없이 유리가 추락하는 것은 재해가 아닌 테러라고 말한다. 자신의 체면과 상황만 생각하며 제대로 된 답변조차 해주지 않는다. 하성우 말대로 “제대로 된 질문이 아니면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없”지만 걷기 좋은 도시 만들기 건축가 모임의 창립자의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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