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백범일지
좌우로 그리고 앞뒤로 항상 흔들흔들 거리는 오뚜기 인형. 어쩜 그리 끈질기게 넘어지는 일이 없을까. 큰 인형은 크게 내려가고 작은 인형은 조금만 내려가지만 올라올 때는 큰 인형이 작은 인형보다 더 높이, 크게 올라온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도 오뚜기 인형과 같다. 그리고 나는 가장 큰 오뚜기 인형이 등장하는 책이 백범일지라고 생각한다. 큰 오뚜기 일수록 크게 기울고 크게 일어선다. 그리고 그 오뚜기인형 자체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하다. 백범일지를 쓰신 김구 선생님처럼 말이다.
김구 선생님이 큰 오뚜기인형 같다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의 삶에서 ‘기운다’ 라는 뜻은 ‘좌절한다’ 라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올라온다’는 ‘성공하다’나 ‘성취하다’와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구 선생님의 삶에도 좌절과 성공이 있었어야 한다. 나는 백범일지를 읽고 김구 선생님의 절망과 성공이 가득한 인생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김구 선생님이 가장 열정적으로 하신 일이 독립운동과 교육이기 때문에 가장 큰 성취는 거기서 찾을 수 있었다. 먼저 우리나라의 독립을 향한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준 ‘한인애국단’ 창립이 그 중 하나다. 이 재단을 창설함으로써 윤봉길의사와 이봉창의사의 의거를 통해 임시정부의 존재를 모국에 있는 동포들과 해외동포 들에게 각인시키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의 주석으로부터 군사 훈련을 위한 장소를 제공 받는대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또한 동산평에 학교를 세우시고 양산학교의 교사로서 하기사범강습회에서 강의를 하신 것도 교육적으로 큰 업적이다. 처음에는 동산평에서 편히 농사를 지으러 가셨지만, 소작인들의 아이들을 위해서 작은 소학교를 세우셨다. 나는 이 작은 일이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을 수도 있었던 젊은이들이 글을 배우고 공부를 함으로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기사범강습회를 통해서는 간접적으로 사람들에게 신식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게 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교육방침을 알린 후로 많은 사람들이 그 방법을 이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이나마 독립을 위해서는 더 나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교육에 대한 의욕이 침체되어있었던 시기에 이렇게 김구 선생님이 사람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한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에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구 선생님이 높이 높이 올라올때까지 몇 번쯤 흔들흔들 거렸을까? 겉으로는 별로 그런 고비가 없으셨던 것처럼 보였지만 백범일지를 읽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김구 선생님도 여느 사람들처럼, 아니 어쩌면 훨씬 더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아직 경험 해본 적은 없지만, 인생에는 큰 고비가 두 번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과정에있고 또 한 번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이루는 과정에 있다.
김구 선생님의 첫 번째 고비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과정에 있었다. 처음에는 양반이 되고 싶어서 임진년 경과에 응시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낙방을 하였고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동학에 입도하셨다. 사실 공부만 하던 사람에게 종교란 조금 거리가 먼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밑에는 망해가는 나라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은 나쁘지 않았지만 정부에서 동학군들을 탄압하여 세력이 약해진 바람에 동학 접주자리에서 물러나게되었다. 그 후로 숨어 살다가 김구 선생님은 자신에게 필요한 가르침은 모두 갖고 계신 고능선 선생님을 만났다. 그렇게 중국으로 가던 길에 김구 선생님은 어설프게 한국사람으로 변장한 왜놈을 발견하셨다. 그때도 나라를 구하겠다는 의지가 강하셨는지 명성황후를 살해한 원수를 갚으려고 그 왜놈을 맨주먹으로 죽이셨다. 그 이후 해주 감옥으로 체포된 후 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하였다. 절도범들과 함께 지내면서 푹 푹 찌는 더위에 더할 수 없이 더러워서 장티푸스에 걸리자 김구 선생님은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동료들이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다시 되살아나셨다고 한다. 그 후로 같이 감방에 있었던 몇 몇 사람들을 동원해 해주 감옥을 탈출하셨다. 이러한 우여역곡절 끝에 다시 고능선 선생님을 찾아가자 더욱 더 실망스러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 믿었던 스승을 다시 찾아가니 둘의 의견이 서로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양반이 되려고 과거시험에 응시 했지만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듯 낙방을 하고 그 후에 찾아간 동학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인정 받지 못했고 왜놈 한 명을 죽인 죄로 감옥생활을 하고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고능선 선생님과의 관계마저 틀어진 후의 기분은 어땠을까. 모든 것을 다 잃고 바닥부터 시작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세상이 자신만 외면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큰 오뚜기였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바닥에 닿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뚜기 인형 답게 다시 일어나셨고 그 후에 하신 일이 동산평에 학교를 세우고 하기사범학습회에서 강연을 하신일이다.
두 번째 고비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향하던 도중의 일이었다. 어느날 왜놈 순사가 와서 황해도 독립운동가들을 다 잡아갈 때 김구 선생님도 거기에 포함되어있었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징역 17년이라는 어마어마한 형을 받고 김구선생님은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7년이면 귀신이나 다름 없다고 하는 감옥에서 자신이 계획했던 모든 독립을 향한 일들을 내려놓기까지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감옥에 가기 전에 김구 선생님은 처음으로 신민회라는 단체에 가입하셔서 만주 이민계획과 광복전쟁을 실행시킬 것으로 황해도 대표로써 약속하셨다. 이렇게 큰 계획이 황해도에서는 중지되고 감옥에 가신 후로 김구 선생님은 세상에 나갈 희망 자체를 버리셨다고 한다. 아마 김구 선생님은 자신에게 운이 없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이런 고비가 와도 김구 선생님은 긍정적이셨다. 왜놈을 희롱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옥중생활의 별미를 즐기기로 하신 것이다. 다행이도 결국은 메이지 천황과 처의 죽음으로 형기가 감하여져 금방 감옥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임시정부 설립에 참여하시고 한인애국단을 창설하고 이봉창의사와 윤봉길의사가 우리나라를 위하여 몸 바칠수 있게 길을 열어주셨다.
이렇게 큰 오뚜기 인형처럼 김구 선생님은 시련이 닥쳐 바닥까지 기울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모두를 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 분이 되셨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만드는데 이바지 하심으로써 우리에게는 영웅같은 존재로 남아계신다. 백범일지를 읽고 난 후 나는 넘어지고 실패하는 데에는 두려움이 없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고 항상 성실하게 이루어 나간다면 언젠가는 나의 노력이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뚜기가 절때 넘어지지 않듯이 나도 열심히 노력해서 큰 오뚜기가 된다면 높이 올라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김 구 선생님처럼 우리나라를 도울 수 있는 오뚜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이렇게 지금 축복받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통일된 부강한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외국에 살면서 내 나라는 ‘대한민국’ 이라고 말할 수 있는게 나는 너무나 뿌듯하다. 태어나서부터 외국사람들 속에서 살아온 나는 사람들이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참 난감하곤 했다. 나는 내 나라에 살아 본 적이 없는데 대한민국에서 왔다고 하기가 조금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한국을 좋아해주는 것을 알고는 오히려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항상 소수의 사람들 속에 속해있던 나에게는 자긍심이 필요했다. 내가 내 자신에게 떳떳해야 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했다. 이럴때 대한민국 이라는 나라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지금처럼 자신있게, 더 나아가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더욱더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도 모두 다 김구 선생님처럼 큰 오뚜기가 되어야 한다. 비록 넘어질때는 크게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면 모든 사람들의 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말이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성공하는 사람이 되는 길이고 도움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바로 김구 선생님처럼 그리고 오뚜기 인형처럼 말이다.
1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