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은 항상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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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은 항상 옳은가

사회 구성원들이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가장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되며 시행되었던 방법이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다. 흔히 다수결을 독재 정치와 대비되는 뜻으로 사용하였고,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단어라고 말하곤 한다. 현대에 들어서는 투표라는 다수결의 방법을 통하여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고 그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기고 있다. 하지만,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다수결이 과연 합리적이며 모든 의사 결정과정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인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 에서 어리석은 다수에 의한 정치를 중우정치라 말하면서 민주제의 타락한 정체라고 표현하였다 플라톤은 중우정치를 다수의 폭민(暴民)에 의한 정치(폭민정치:mobocracy)로 규정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수 빈민의 정치(빈민정치:ochlocracy)라고 규정하였다. 민주제가 상황에 적합한 효과적인 리더십을 결여하였을 때 나타나는 정치현상이며, 중세 ·근대에 이르러서도 대중에 의한 정치를 혐오하는 많은 보수적 정치가나 사상가들에 의해서 민주제 ·민주주의에 대한 멸시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 이것으로 고대에도 다수결의 정치가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세시대를 거쳐 근대를 지나 현대까지 오는 동안 수적으로 가장 다수였던 민중들은 왕과 귀족에게 탄압받고 시민혁명 후에는 부르주아 계급에 탄압받았다. 그러는 동안 민중들은 소수 지배층의 압제를 가장 경계하기 시작했고 그들에 대한 반감으로 다수결에 의한 결정을 최고 가치로 여기게 되었다. 그렇게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이 가장 합리적이고 민주적이라고 생각되었으나 다수결 또한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다. 다수 의견에 의해 무시되는 소수 의견은 어떻게 할 것이며, 다수 의견이 틀린 의견이며 소수 의견이 옳은 결정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수결이란 이름하에 행해진 폭정은 과거의 많은 시대와 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의견과 가치관을 따르고 있더라도 사회 다수와의 의견이 다르면 그 의견은 잘못된 의견이 되고 만다. 다수결의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다수를 위해서는 소수는 희생되어도 된다는 극히 위험한 생각을 지닌다는 것이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당연시되고, 각 개인의 개성과 존엄보다 다수를 위하는 것이 마치 국민의 의무인 것처럼 희생을 강요하곤 한다. 중세에서 근대로 나아가게 한 것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혁명의 시작은 다수결로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칸트 독일의 철학자. 서유럽 근세철학의 전통을 집대성하고, 전통적 형이상학을 비판하며 비판철학을 탄생시켰다.
와 루소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소설가. 작품은《신 엘로이즈》,《에밀》,《고백록》등이다. 프랑스 혁명에서 그의 자유민권 사상은 혁명지도자들의 사상적 지주가 되었다
를 비롯한 계몽주의를 주장한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결코 다수가 아니 였으며, 사회적으로 소수에 지나지 않는 학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로부터 시작된 이념으로부터 출발한 이념이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 내게 하였다. 또한 중세의 종교 개혁을 이끌어내고 교황에게 고통받는 대중을 구한 것은 소수의 종교 개혁자였으며, 그때의 지배계층뿐만 아니라 피지배 계층인 일반 다수의 대중들 마저도 그 상황에 순응하며 지내고 있었다. 만약 다수인 대중들에게 그대로 맡겨 두었다면 결코 개혁은 이루어 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예를 찾아보면 1차대전 후에 나타난 독일의 히틀러는 많은 대중이 지지를 기반으로 권력을 장악하였다. 전후처리로 고통받던 독일국민 대다수는 히틀러를 맹렬히 지지하였다. 히틀러는 세계 2차대전을 일으키고 홀로코스트 일반적으로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거나 대학살하는 행위를 총칭하지만, 고유명사로 쓸 때는 제2차세계대전 중 나치스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뜻한다.
와 같은 비극을 만들어 냈다. 다수결로 결정 하는 게 옳다면 이런 결과도 존중해야 하는가? 현명한 자들이 결정할 수 있었다면 히틀러를 그들의 지도자로 결정하였을까? 그들의 다수가 바른 판단을 할만한 판단력과 이성을 가졌는가? 다수가 결정하게 되는 판단 성향을 보여주는 예는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과거 제3공화국의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 정치의 전형이라 불리고 3번의 직선제 선거에서 두 번이나 50%를 넘는 득표를 얻어 정권을 연장 시킬 수 있었으며 특히, 71년에 7대 대통령 선거는 박정희가 69년에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 후에 치러졌음에도 다수가 지지하여 재집권할 수 있었고, 72년에 유신이라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게된다. 그때 다수가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더 일찍 왔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3번의 직선제 선거 모두 박정희를 지지하였다 5대 대통령 선거: 1963.10.15 - 직선제(투표율85.0%)
박정희가 46.6%를 득표, 45.1%의 득표율을 얻은 민정당의 윤보선을 근소한 차이로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
6대 대통령 선거: 1967.5.3 - 직선제(투표율83.6%)
박정희가 51.5%의 득표율을 얻어 40.9%를 얻은 윤보선을 이기고 재선에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