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악을 허용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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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악을 허용하시는가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주제: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악을 허용하시는가?
서론
오늘 날 뉴스와 기사를 보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범죄사건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살인 사건, 유괴, 성 폭력, 총기 난사, 대량 학살 등등 그 종류도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 어떤 것들은 인륜과 상식에 어긋나는 범죄와 악들도 있다. 이러한 소식들을 접하다 보면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신 건지, 살아계시다면 왜 악을 허용하시는 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도 선하시며,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그런데 왜 그 하나님이 이 땅 가운데에 만연하고 있는 악을 제거하지 않으시는가? 본 글은 이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본론
신정론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 가운데에서 일어나고 있는 악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 왔다. 그 악의 문제로 생기는 하나님에 대한 비판을 해결하기 위해,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더라도 여전히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것을 변호하려는 이론이 바로 ‘신정론’이다. 신정론은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의’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정당성의 논의를 의미한다. 신정론이란 신학적철학적으로 제기된 악의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변호하는 것으로, ‘신정론’이라는 말은 17C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고안했으며, 고대로부터 다양한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신정론을 제시해 왔다.
어거스틴의 신정론
어거스틴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입장이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사람을 로봇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적 피조물로 만드셨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죄악의 기원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오용하고 남용한 데에 있다고 말했다. 사람은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과 반대 되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 파멸을 가져오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파멸과 그 결과로부터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즉 하나님이 무능하셔서 악을 제거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로 대하시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부산물 내지는 필요악으로 친히 감수하시겠다고 결정을 내리신 것이다. 따라서 죄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모순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도 괴리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거스틴의 신정론은 전통적인 복음주의 신학 진영에서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현대 기독교 철학의 대가 중 한 사람인 앨빈 플랜팅가 교수, 20C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 C. S. 루이스도 넓게 보아서 어거스틴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특히 C. S. 루이스는 하나님은 전지(全知)하시기 때문에 “비록 피조물들이 타락해 버렸지만, 로봇의 세상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행복과 더 온전한 아름다움을 자유로운 피조물들의 세계로부터 만들어 내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라고 말하였다.
이레네우스의 신정론
이레네우스는 어거스틴보다 조금 더 초기의 교부로, 초대 교회 때 영지주의를 배격하고 성경적인 복음을 탁월하게 변증한 교부로, 그는 사람의 자유의지보다 죄악의 필요성을 더 강조하는 입장에 서 있던 인물 중 한 명이다. 이레네우스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 자유의지를 책임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완전한 성인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타락 사건의 경우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어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보았다. 타락 이후 인간은 계속해서 악과 선을 동시에 경험해 가며 죄악이 나쁘다는 것과 선이 좋다는 것을 배우게 되고, 그럼으로써 사람은 역사의 종말이 올 때야 비로소 성숙한 성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죄악은 사람을 교육하고 훈련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인 것이다.
이러한 이레네우스의 주장은 로마서 8장 28절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다. 그러나 전후 맥락을 살펴볼 때, 도덕적인 선과 악을 합하여 더 높은 차원의 선을 이룬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 구절에서 말하는 ‘모든 것’이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경험하는 어려움이나 고난을 포함하는 모든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범하는 죄악도 결국 우리에게 더 높은 차원의 선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이 구절을 해석하면, 반복적으로 죄를 짓지 말 것을 명령하는 성경의 다른 본문들과 괴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이 바로 이레네우스 신정론의 최대 약점이다. 이레네우스는 죄악의 필요성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손상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십자가의 신정론
신학자 몰트만은 십자가의 신정론을 주장하였다. 몰트만은 십자가 사건이 악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보았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신 사건은 죄악을 제거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무능함에 대한 책임 행위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으로서 죄악을 제거하시려는 분이 아니라, 죄악이라는 신비스러운 문제를 십자가로 가져가서 그 곳에서 스스로 죽으심으로써 죄의 존재에 대한 당신의 책임을 다 지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하지만 성경 전체 맥락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