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철학적 환경 담론의 필요성
오늘날 지구촌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환경 문제의 밑바탕에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보는 인간의 잘못된 자연관이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도구적 자연관이다. 이는 자연이 인간의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서의 가치만을 갖는다고 여겨서 자연은 인간의 손길이 미칠 때에만 비로소 가치를 갖게 된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 도구적 자연관이 자연을 무조건 착취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도구적 자연관 나름대로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환경공학적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환경 위기를 어느 정도 지연시킬 수 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류 전체가 자연에 대한 도덕적인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연은 그 자체로서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음을 모든 사람이 올바로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겸허하게 자연을 대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합자연적 생활 태도를 함양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동양의 자연 철학은 오늘날의 환경 위기를 극복하는 데 귀중한 가르침이 됨에 틀림없다.
그러나 환경 위기 문제에 대하여 이와 같은 동양적 자연관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동도서기적 사유구조와 응용의 원리적 접근이 팽배하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산업 개발은 서양의 근대 과학주의적 사유를, 자연 보존은 동양적 사유를 원용하여, 양자의 장점만 수용하자는 절충적 사고다. 그러나 이러한 결합적 사고는 애매모호하여, 강력한 서구 근대 과학주의적 사고로부터 나오는 물질적 개발 능력 앞에서는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동양적 자연관이 현대 환경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적 사고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서양의 과학기술주의적 사고의 힘을 업은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와 생산구조에 의한 압도적인 인위(人爲)의 문명에 대하여 무위(無爲)의 자연이 균형을 찾을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동양적 우주 자연 인식은 우주자연과 인간의 삶을 양자(兩者)간의 일치 내지는 조화의 관계로 본다. 특히 노자의 자연관은 인간이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자가 말하는 자연은 자발적이고 근원적인 무위이며, 또한 스스로 그러함을 의미한다. 즉, 자연의 섭리에 인간의 욕망이 무리하게 개입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극심한 환경 파괴가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여 자연을 언제나 인간이 지배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아 인간의 이익과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그 원인이 있었다면, 이제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의 한 구성원에 불과하다는 소위 자연친화적 인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전환에 환경윤리 교육적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따라서 노자 자연철학적 사유는 오늘날에 절실히 요청되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적 관점과 그 조화를 담지할 수 있는 무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사유체계보다도 새로운 환경윤리적 사고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노자의 자연철학
노자는 자연철학자인 까닭에 그의 사상 속에는 동양적 자연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특히 『도덕경』은 우주 자연현상에 대한 그의 자연철학적 해석이 탁월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평가된다. 우선 노자는 사람의 욕심이나 욕망 추구를 위한 인위적인 작위를 부정하고 도(道)로 복귀하여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권하였다. 따라서 그의 자연관에 대한 이해는 그의 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노자에게 도(道)란 무엇인가?
첫째, 도는 천지만물을 발생하게 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어떤 물건이 혼동이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하늘과 땅의 생성보다 앞서 있었다.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형체도 없지만 홀로 존재하며 변화하지 않고, 모든 것에 두루 행하여지면서도 위태롭지 않으니 천하의 모체라 할 만한 것이다. 나는 그것의 이름을 알지 못하므로 그것을 도(道)라 이름 지었고 억지로 그것을 대(大)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이와 같이 노자는 현상적으로 보이는 사물 외에도 사물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어떤 실재가 존재한다고 보았고,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의 근거를 도라고 표현하면서 도를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노자의 도는 천지만물을 생기게 한 근원으로 천지 만물의 어머니라 할 수 있으며, 끊임없이 존재하면서 발생하게 하고 변화시킨다.
도는 텅 비어 있지만 거기에 작용을 가해서는 절대로 차지 않는다. 심원(深遠)하기 만물의 조종인 듯하다. …… 나는 그것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상제(上帝)보다 앞서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노자는 천지만물의 근원인 도를 텅 비어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도를 비어있는 것, 즉 무(無)로 표현하면서도 절대 차지 않는 만물의 근원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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