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보관]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서비스와 인보관
(1) 요보호아동의 보호
식민지 이주기간 동안은 높은 사망률과 평균수명의 저하로 인하여 수많은 아동이 빈곤한 상태로 방치되었다. 친척, 이웃, 교회, 소수민족집단, 종교단체가 일부 요보호아동을 보호했고 이외의 다른 아동은 싼 노동력으로 오랫동안 도제살이를 했다.
유아는 각 가정에 위탁되거나 구빈원에 수용되었는데 민생위원은 이들을 무분별하게 배정했다. 19세기에는 훨씬 더 많은 아동이 구빈원에 수용되어 여러 가지의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가진 성인들과 함께 충분한 식사와 의복도 없이 컴컴하고 혼잡한 불결한 방에서 생활했다.
이와 같은 구빈원의 전형적인 상태는 1857년에 뉴욕의 한 위원회의 조사에 의하여 폭로되었다. 이 위원회는 구빈원을 공공자선의 가장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겼단 "구빈원은 범죄에 대한 형별보다도 숙식, 의복, 환기 등과 같은 더 중요한 것을 박탈하는 것이다."라고 묘사했다. 위원회는 아동을 구빈원으로부터 나오게 하여 잘 교육시킬 수 있는 고아원으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아동을 혼잡스러운 구빈원으로부터 고아원으로 옮겨주는 일은 서서히 특히 농촌지역, 소도시에서 이루어졌다. 1875년까지도 주자선위원회충회 (Congress of State Boards-of charities)는 범죄좌와 성인 구호대상자가 들끓는 교도소와 다른 장소에서 아동을 옮겨주도록 주의회에 여전히 요청하고 있다.
특히 뉴욕에서는 많은 아동이 거리에서 절도와 구걸로서 생존해 갔다. 1853년에 브레이스(Brace)는 미국 중서부 농촌지역의 위탁가정에 있는 아동을 위한 뉴욕 아동원조협회(New York childrens Aid Society)를 설립했다.
그는 아동이 농장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과 위탁부모에 의하여 싼 노동력으로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많은 아동은 기회가 나는 대로 탈출하여 도시로 되돌아 왔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발티모아, 보스톤, 필라델피아와 같은 다른 도시는 뉴욕의 예를 따랐다.
아동의 배정을 위한 최초의 전국적인 기강인 전국교육협회(American Education Society)가 1883년 버런(Buren)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이 기관은 주자선위원회 주관 하에 아동들을 위탁가정에 배정하는 가운데 가능한 한 농촌지역에서 위탁가정을 찾기를 더 원하였다. 그리고 아동에 대한 처우보장을 위해 검열관을 파견했다.
그러나 아동이 농촌지역사회에 정착하게 되면 경비 지출이 필요 없었기 때문에 검열관은 아동을 보호하는 위탁가정에 많은 조언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양부모와 계속적인 접촉을 유지하거나 미래에 재결합을 시키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이 아동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었다.
1800년대 후반의 산업발전 기간 동안에 아동의 건전한 발달에 있어서의 교육자의 역할을 강조했던 듀이(Dewey)의 철학은 사회적 혜택을 못 받는 미국 아동의 삶에 깊은 실제적인 영향을 끼쳤다.
(2) 청소년을 위한 서비스
19세기 중엽에는 특히 대도시에 거주하는 청소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계획된 단체가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형태의 협회는 런던의 청년에게 기독교적 생활양식으로 돌아가도록 시도한 월리엄스(Williams)에 의하여 1844년 처음으로 영국에서 창설되었다. 이러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그는 최초로 기독교청년회MCA)를 창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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