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학기 일본근세근현대사 기말시험 과제물(일본근세근현대사 관련 사항 조사 정리)
1. 겐로쿠문화[4점], 2. 가세이(化政)문화[4점], 3. 교호개혁[4점], 4. 간세이개혁[4점], 5. 덴포개혁[4점], 6. 사이고 다카모리와 정한론 논쟁(메이지6년의 정변)[4점], 7. 오쿠마 시게노부와 메이지 14년의 정변[4점], 8. 시모노세키조약[4점], 9. 포츠머스조약[4점], 10. 다이쇼데모크라시[4점] 11. 메이지헌법(대일본제국헌법)과 평화헌법(일본국헌법)[4점] 12.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과 미일 안보조약[6점]
- 목 차 -
1. 겐로쿠문화
2. 가세이(化政)문화
3. 교호개혁
4. 간세이개혁
5. 덴포개혁
6. 사이고 다카모리와 정한론 논쟁(메이지 6년의 정변)
7. 오쿠마 시게노부와 메이지 14년의 정변
8. 시모노세키조약
9. 포츠머스조약
10. 다이쇼데모크라시
11. 메이지헌법(대일본제국헌법)과 평화헌법(일본국헌법)
12.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과 미일 안보조약
참고문헌
** 함께 제공되는 참고자료 한글파일 **
1. 일본근세근현대사 관련 사항 조사 정리.hwp
2. 일본근세근현대사 관련 사항 조사 정리2.hwp
17세기 후반의 사회는 상품경제가 발달하고, 도시가 번영하였으며, 조닌이 경제적 실력을 자랑하던 시대였다. 이러한 특색을 지닌 시대를 겐로쿠 시대라 하고, 이 시대의 문화를 겐로쿠 문화라고 한다. 경제적인 실권을 장악하게 된 조닌들은 경제력을 배경으로 하여 밝고 활기에 찬 문화를 창조하였다. 이 시대에 유학이 일본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봉건 교학의 지위를 확립했던 것은 유학 중에서도 주자학이었다. 양명학은 크게 발달하지 못하였지만, 주자학에 고학이 발달하였다.
이 시대에는 실증적인 학문이 발달하였다. 역사학과 국문학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특히 국문학 분야에서 <<만요슈(萬葉集)>>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이는 국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겐로쿠 문화의 담당자는 교토와 오사카의 조닌들이었다. 소설과 연극 그리고 미술이 발달하였다. 문예 분야에서는 훗날까지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가들이 출현하였다. 그리고 서민들이 가장 애호하는 풍속화인 우키요에(浮世繪)가 발달하였다.
2. 가세이(化政)문화
에도 시대 후기의 문화는 19세기 초인 분카(文化).분세이(文政) 연간에 최성기를 맞이하였기 때문에 이 시대의 연호를 따서 가세이(化政) 문화라고 한다. 이 시대는 이미 실태적으로 상당히 이완된 질서를 막부가 법의 정당성만을 내세워 강제적으로 유지하려고 하였던 시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가세이 문화는 막부의 엄격한 통제 속에서 활기를 상실하고, 퇴폐적이고 무기력한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가세이 문화는, 건전하고 활기에 넘쳤던 겐로쿠(元祿) 문화와 비교해 보면, 애욕과 웃음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타락하였다. 서민들은 억압된 본능을 풍자와 해학으로 발산시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민 문화의 수준이 향상되었다. 전국적으로 학교가 세워져서 서민의 자제도 실용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가 늘어나게 되었다. 국학과 양학이 이 시대에 이르러서 발달하였다.
문학은, 소설은 물론 하이카이(俳諧)나 와카(和歌) 분야에서도 통속적인 경향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었으나 많은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미술 분야에서는 판화가 발달하였다. 판화는 점차로 기법이 개발되면서 여러 가지 색깔을 사용한 니시키에(錦繪)가 제작되었다.
3. 교호개혁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막번체제는 벌써 붕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시대에 막번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실추된 막부의 권위를 세우고 지배 계급인 무사의 경제적 우위를 확보하는 한편, 농촌경제를 안정시키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였다.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가 제8대 쇼군에 취임하면서 개혁을 단행하였는데 이 개혁을 교호(享保) 개혁이라고 한다. 교호개혁은 농촌의 부흥과 막부 재정의 재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뒤를 이은 제9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시게(德川家重)는 1760년에 은퇴하고, 도쿠가와 이에하루(德川家治)가 제10대 쇼군에 취임하였다.
18세기 초기까지 무사가 관직에 취임하면 그에 상응하는 봉록을 인상하고 그것을 상속하도록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도쿠가와 요시무네는 무사가 관직에 재직하는 기간에 한하여 직책에 해당하는 봉록과 그 무사가 원래 지급받았던 고쿠다카(石高)와의 차액만을 지급하는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것을 다시카가(足高) 제도라고 하였다.
막부는 수입의 증가를 꾀하기 위하여 경작지 개발과 상품 작물을 장려하었다. 막부는 1722년에는 에도의 번화가에 방을 붙여서 대상인들이 대규모 경작지 개발에 자본을 투자하도록 유도하였고, 막부도 직접 자본을 투자하였다. 또 산업 개발에 도움이 되는 실학을 장려하기 위햐어, 한문으로 번역된 서양 서적의 수입을 허용하였다. 이 때, 크리스트교와 관계없는 기술 서적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의 서적이 일본으로 수입되었다. 그리고, 서양의 학문인 난학(蘭學)을 배우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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