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크스 형제의 개혁과 영향
마리우스의 군제개혁
동맹시 전쟁
술라의 국제 개혁
삼두정치의 개관
삼두정치의 과정
삼두정치의 결말
카도주의와 카이사르주의
카이사르의 죽음
2차 삼두정치
결론
포에니 전쟁의 승리와 카르타고의 멸망으로 로마는 지중해의 왕자로 떠오르게 되었으니 시리아를 정복하여 속주로 삼았고 마케도니아를 정복하였으며, 기원전 146년에는 카르타고를 멸망시키니 지중해는 완전히 로마의 손아귀에 들게 되었다. 이제 에스파냐에서 소아시아에 이르는 넓디넓은 영토를 차지한 로마는 세계의 심장이 되었다. 영토가 크게 늘어나고 정복한 땅에서 포로로 잡아 온 노예가 늘어남에 따라 로마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자유민의 수가 줄고 있었다. 지주들의 대토지 겸병이 이루어지고 자유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했다가 포에니 전쟁 및 많은 전쟁으로 인한 노예들의 몰입으로 소작농역시 사라지게 된다. 그러니 대토지(라티푼디움) 노예노동의 대가로 나온 곡물은 싸고 자유민들의 곡물은 비싸서 대지주들이 시장까지 독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자유민들이 헐값에 땅을 팔고 로마로 막노동을 하러 가게 되는 형편이었고 이럼으로 로마에는 많은 자유민들이 헐벗고 있었다.
군인들 역시 전쟁이 끝나자 소외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 시켰다. 이를 타게 하기 위해 원로원이 택한 방법이 바로 빵과 놀이였다. 구호식량을 조금 나누어 주고 구경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 이였다. 검투사끼리의 싸움, 사자, 코끼리 등 맹수들의 싸움, 인간과 맹수의 대결등 피비린내 나는 비극의 경기는 로마시민의 불평불만을 다른데로 돌리려는 국가의 정책이었으며, 시민들은 목숨을 건 경기의 승패에 돈을 걸고 도박을 하는 등 로마에는 하루도 피가 흐르지 않는 날이 없었다. 이를 경고하기 위한 수많은 개혁들이 일어났고 그 개혁들을 방어하고 협상하는 사이에 공화정은 서서히 몰락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삼두정치는 바로 그 공화정의 몰락에 끝자락에 있던 사건이었다. 때문에 여기서 필자는 삼두정치 전 개혁들에 대해 알아보고 삼두정치의 상황 그리고 카이사르의 죽음 까지를 알아봄으로써 로마 공화정의 쇠락과 제정의 배경을 알아보기로 하겠다.
그라크스 형제의 개혁과 영향
개혁 - 오랜 동안 전쟁이 계속되어 토지가 메마른데다가 식민지에서 곡물이 값싸게 수입되자, 로마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자영농민들은 점차 몰락하였다. 그러나 귀족들은 농민의 토지를 차지하고 전쟁에서 포로로 잡아온 노예들을 부려서 농장을 경영하게 되었다.
이러한 농장 경영의 발달은 노예의 반란을 가져오고 자영 농민의 몰락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이리하여 로마 사회는 많은 혼란을 겪게 되었다. 기원전 2세기 후반, 호민관 그라쿠스 형제는 이러한 사회의 혼란을 바로잡으려고 개혁을 시도했다. 가난한 사람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고 자영 농민을 키우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개혁은 귀족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쳐 실패 하였다. 로마는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개혁에 실패한 그라쿠스 형제는 반대파에 의하여 살해 되었다.
허승일. 로마공화정. 대학교양총서 73.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7
한스 오퍼만 지음. 안미현 옮김. 카이사르. 한길사. 1997
에드워드 맥널번즈 外. 서양 문명의 역사1. 소나무 출판사. 1987.
프레대리크 들루슈 外. 윤승준 역. 새 유럽의 역사. 까치글방. 1995.
허승일. 로마공화정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5
루카드 블로와 外. 윤진 역. 서양 고대문명의 역사.다락방. 2003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