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협회
두 번째는 서재필 박사의 귀국 후 활동을 위해서 정동구락부를 통해서 국내인 사를 통해서 1895년 12월 귀국하였다. 대한제국 정부는 근대적 개혁에 필요한 식견을 구하기 위해 서재필 박사에게 중추원 고문관의 직위를 주었으며, 서재필 박사에게 자금을 지원하여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서재필은 배재학당에서 특별강의를 열었다. 1896년 12월에는 학생 토론 모임인 협성회를 조직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였다. 사회 개량과 풍속교정을 위한 사회운동을 위한 정치적 사교 단체로서 건양 협회를 1896년 2월 3일에 결성하였다.
정통파 내각은 관민 간의 이해촉진과 국민계몽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아관파천 직후 1896년 7월 2일 독립협회를 창립하였다. 서재필은 1898년 5월에 미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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