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의 역사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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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검도의 역사적 고찰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우리나라에서의 검도의 역사

한국 검의 특징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여러 가지 사서나 자료를 참고해 보면 알겠지만 우리나라의 검도도 역사는 퍽 길다. 멀리는 마제석검-청동기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기원전 약 10세기부터 금속기가 본격적으로 제작된 기원전 2세기경까지 만들어져 사용되었다고 생각된다-로부터 시작하여, 고구려 시대를 거쳐 신라 시대를 들어오는 동안에 제법 발달을 보다가, 신라 제 24대 진흥왕(眞興王)때에 이르러 화랑도제도(花郞道制度)의 창시를 봄으로써 검술의 개화기를 맞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숭문천무(崇文賤武)의 기풍이 짙어지자 그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거의 자취를 감추기까지 하였다. 그러다가 1896년에 경무청이 치안의 필요성에서 경찰교육의 한 과목으로 실시하였고 1904년에는 장교의 재교육 기관인 육군연성학교에서 검술과를 두어 군경간에 널리 보급된 것이 바로 오늘날의 검도이다.
아마 여기까지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한국 검도의 대략적인 역사일 것이다. 이조시대에 들어서 유교의 영향으로 문을 숭상하고 무를 천시하는 풍조가 생겨나 검술을 비롯한 대부분의 무예들이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라고. 그러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대답이다. 임진왜란 이후 무비(武備)의 필요성을 절감한 조선 정부는 검술의 전수와 점검을 매우 중요시 하였다. 그러나 인조 6년(1628)의 기록을 보면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라가 점차 안정되자 다시 검술 교습을 등한시 한 것 같다. 그러나 병조에서는 어떤 전투이건 간에 승부는 네 가지 기예, 즉 활쏘기 ․ 창쓰기 ․ 총쏘기 ․ 말타기가 쓸모 없어지면 반드시 검으로 승부가 나므로, 검술 수련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임금에게 아뢰기도 했다.
참고문헌
옛 그림에서 만난 우리 무예 풍속사 / 허인욱 / 푸른역사 / 2005
한국고대검도사에 관한 연구 / 이종림 / 成均館大學校 大學院 /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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