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조선시대의 의문사
2. 현종의 죽음에 대하여
인조반정이후 개혁을 주도하던 서인은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거치며 심한 좌절을 겪는다. 이러한 와중에 청에 인질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고 온 소현세자가 두 달 만에 죽고 소현세자의 아들 대신 주화파의 지지를 받는 장유의 사위 봉림대군이 형망제급의 변칙으로 세자에 책봉되어 효종으로 즉위한다. 그러나 효종은 즉위하자마자 북벌론을 외치며 성리학적 의리명분을 확립하고자 하니 강빈 신원운동을 벌이려 한다고 하여 서인들을 제거하려던 이온 등 남인들의 기도는 무산되고, 오히려 강빈옥사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당시 영의정이 된 감자점을 탄핵하는 김홍욱 등의 상소가 잇따라 일어나면서 인조의 묘호를 정하는 문제로 인조의 실정을 비판하는 논의마저 나오고 효종 2년(1651)에는 김자점과 조귀인 일파가 청과 밀통한 사건, 역모 사건 및 저주 사건으로 인하여 처단되기에 이른다.
효종이 즉위하여 북벌대의를 천명하자 병자호란당시 화약으로 자결한 효종비 장씨의 외조부 김상용(1561~1637)의 동생이며, 남한산성에서 항복문서를 찢고 6일간 단식하다 목을 매달아 자결하려 했다가 이계(1603~1642)의 밀고로 심양에 끌려가 8년간 고초를 겪었던 척화론의 종주 김상헌(1570~1652)을 중심으로 북벌론이 내세워지고 이를 따르는 김집.송시열 등이 대거 등용되어 송시열(1607~1689)이 북벌론을 천명하는 ‘기축봉사’라는 비밀 상소까지 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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