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아큐정전`을 읽고
1901년 청조는 북경으로 권력을 집중시킴으로써만 근대화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청조 재건이라는 기치 아래 중앙집권적 근대화를 시행한다. 하지만 주요한 지방에서는 독자적으로 근대화가 진행 중이었고, 따라서 청조 재건을 위한 중앙집권적 근대화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중앙정부에서 시행한 근대화 중 교육개혁은 그 동안 중국이 취해왔던 교육방침과는 근본부터 달랐다. 교육 자체로서는 도덕적 질서를 구성하지 않는 기술적인 전문직으로 학생들을 끌어들였는데, 이는 신유교적인 체계의 정당성을 상실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대체할 만한 어떤 것도 제시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회의 변화는 불안정하게 되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군대의 장교들이 장식물까지도 서양식으로 입게 된 것부터, 고급관리와 상인들도 신사복을 입고, 급진적인 학생들은 청조에 대한 도전으로 변발을 잘랐다. 또 새로운 신문과 출판물들은 중국 내의 시사문제 뿐 아니라 세계에 대해서도 넓은 시야를 제공했고, 식자(識字)능력과 뉴스의 보급은 과거 신사들의 여론보다 훨씬 넓고 의미가 깊은 대중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도와주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청조 정부는 부분적으로 외국의 선례를 따라 체계적인 정책들을 계속 추구했는데, 그 정책들이란 새로운 엘리트들의 전문적인 행동을 국가가 규제하고 통제하여 준(準)행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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