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 복지국가에 관하여 설명하시오
스칸디나비아 또는 노르딕 국가의 사회복지정책은 그 진보성과 관대함 때문에 전세계 사회복지의 절정(Pinnacle) 또는 복지국가의 최고 단계(the highest stage of the welfare states evolution)로 간주되고 있을 정도이다.
스칸디나비아 사회복지정책은 비스마르크 사회복지정책과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데. 비스마르크 사회복지정책은 이른바 직업주의(occupationalism)에 따라 대상자를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각 자영업자 집단별로 분리하고, 사회보험방식에 의해 자본과 노동이 재정을 분담하는 데 반해, 스칸디나비아의 사회복지정책은 직업을 불문하고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하고, 평등한 정액의 급여를 제공하며, 재정의 상당 부분을 조세에 의존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보편주의적이고 평등주의적이며 연대성을 중시하는 스칸디나비아 사회복지정책은질적으로 보수주의적인 독일이나 자유주의적인 영국의 사회복지정책과는 차이가 난다. 이런 이유로 스칸디나비아 복지국가는 복지국가의 이상형(ideal type)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복지학자들은 사회보험방식보다는 조세방식을 더 진보적이라고 생각한다. 조세방식이 본인 부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조세가 보험 갹출료보다 더 누진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덴마크와 스웨덴의 조세방식 연금과 그 보편주의적 성격은 이들 노르딕 국가의 사회복지 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평가받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보편주의적 조세방식 연금의 출현 배경을 살펴보면 철저히 계급 이기적이었고 진보성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말하자면, 노르딕 국가의 보편주의는 인류의 복지를 전향적으로 생각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특정 계급, 즉 농민의 이기적 요구가 관철된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농민들과 주로 대립한 계급이 바로 노동자 계급이었다.
노르딕 사회보험은 유럽의 다른 나라와 같이 1930년대나 제2차 세계대전 후가 아니라 이미 19세기 말에 입법화가 이루어졌다. 그때는 주로 농민들안 중간계급이 정치적으로 승리했는데, 이같이 중대한 정치적 투쟁의 시기에 사회보험이 도입되었던 것이다. 그 좋은 예가 1891년 덴마크와 1913년 스웨덴의 무갹출연금이다.
1891년, 덴마크는 비록 그 대상자가 가난한 노인에 국한되었지만, 조세로 재정을 충당한다는 점에서 비스마르크 사회복지정책과는 전혀 다른 무갹출연금을 도입하였다. 당시 농민들은 토지에 부과되는 지방세를 모두 부담하고 있었다. 지방세는 빈민구제의 재원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사회보험이든 조세방식이든 새로운 연금제도가 도입되면 빈민구제를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농민들의 부담이 줄어들 것 같았다. 그렇지만 농민 입장에서 보면 갹출제 사회보험보다는 조세방식의 연금이 훨씬 유리했는데 이유는 분명했다. 노동집약적인 낙농 생산물 수출업자이자 중소규모 농장주로서 농업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던 덴마크 농업 프티 부르주아지에게 사회보험 갹출료는 재정적 부담이 되고 생산물 가격에 전가되어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릴게 뻔했던 반면에, 조세방식은 덴마크에서 수적으로 가장 많은 고용주집단인 농민에게 갹출료를 부담시키지 않을 것이었고 또 노동자가 부담해야 할 갹출료가 없으므로 그만큼의 임금 인상을 억제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조세는 당시 주로 도시 부르주아지와 공업 노동자들이 부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과중한 빈민구제 비용을 떠맡아 왔던 농민들로서는 그 부담을 도시민에게 전가하게 된다는 의미까지 있었다.
이들 농민들의 계급적 이익을 대변한 자유당은 조세방식의 연금을 주장했고, 왕당파 관료, 도시 전문직, 제조업 계급, 귀족적 토지 소유자색 정당인 보수당은 갹출제 사회보험방식을 원했다. 보수당은 사용자인 농민들이 피용자인 농업노동자들의 노령과 장애에 대한 보장의 책임이 있다고 간주하여 갹출제가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좌파인 사회민주당은 당시 당세 확장을 위해 농촌사회와 농촌의 프티 부르주아지의 지지를 얻는 동시에 조세방식이 노동자를 위해서도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불충분하고, 노동의 권리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자가 궁핍에 직면했을 때 국가가 무조건적으로 하나의 권리로서 원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회민주당과 자유당이 무갹출연금을 주장하게 되면서 1891년의 연금은 사회보험 방식이 아닌 조세방식으로 결정되었다.
보수당은 양보하는 대신 그 수혜층을 10년간 빈민구제의 대상이었던 가난한 노인에 국한한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새로운 연금법의 골자는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욕구가 있는 60세 이상의 노인에게 연금을 주고, 그 내용 절반은 지방정부가 부담하고, 나머지 반은 국가가 보조하는 것이었다.
1913년의 스웨덴의 연금도 노동자계급보다는 농민의 이익이 관철되었다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 덴마크와 같다. 다만, 좌파 정당인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덴마크의 사회민주당과 달리 독일식 사회보험방식이 노동자계급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입장과 반대로 노동자계급뿐만 아니라 모든 피억압자(all the oppressed)의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믿어 보편주의를 찬성한 사람으로 분열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수의 농민들의 정치적 힘에 있었고, 결국 조세방식 연금으로 귀착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양국의 조세방식 연금은 스웨덴의 경우 1946년에, 덴마크의 경우 1964년에 자산조사를 폐지하고 부유층으로까지 그 대상을 확대함으로써 명실상부한보편주의 제도로 자리 잡았다.
1950년대 이후 산업화가 더욱 진전되면서 농민들보다는 도시 노동자들의 수가 증가하고 또 이들의 힘이 점차 강해지자, 사회복지정책에서도 농민들보다는 도시 노동자들의 입장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스칸디나비아 사회복지 정책도 보편주의 모델에서 탈피하여 비스마르크 사회보험을 닮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피용자만을 대상으로 하면서(자영업자는 임의가입) 급여를 소득에 연계시킨 1958년 스웨덴의 소득비례연금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소득비례연금은 적용대상에서 사실상 농민을 제외시켜 농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농민당과 사민당 연정(1932년 총선 이후 구축)에서 농민당이 탈퇴하는 사태를 야기했다.
스웨덴의 사회복지정책을 논할 때 때놓을 수 없는 것이 이른바 스웨덴 모델이다.
스웨덴 모델은 자본과 노동 간의 역사적 대타협이라고 하는 1938년의 "살쯔요바덴 기본 협정"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데, 동 협정의 핵심은 생산 관련 결정은 자본가계급에게 일임하되 정책 결정 환경은 국가와 노조가 강력하게 통제하는 체제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생산 환경에 대한 통제로서 단체협상을 통한 실질임금의 보장과 완전 고용 및 소득재분배를 지향하는 사회복지정책이 수용되었는데, 이런 케인스주의적 경제사회정책에 대한 노동과 자본의 합의정신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높은 수준의 복지국가를 가져 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사회복지의 이해 : 윤찬영 저, 정민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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