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무어의 작품세계.
1)무어의 초기조각
2)1930년대
3)1940년대
4)1950년 이후.
3.헨리 무어의 조각의 특징.
1)재질에의 충실함
2)유기적(有機的)인 방향·비대칭적인 수단
3)공간과의 새로운 관계. 구성
4)아련한 원시성
5)전쟁의 그림자
6)조각적 환상
4.미술사적 의의 및 그의 영향성.
헨리무어는 1898년 7월 30일 8형제 중에 7번째 아들로 요크셔의 카슬퍼드에 있는 광산촌에서 태어났다. 런던에 처음 나온 해는 1917년. 이해에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프랑스 전선에 있었으나 부상해 영국위로 귀환했다. 이듬해 제대 자금으로 리즈 대학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미술 수업에 들어섰고, 다시 장학금을 얻어 런던의 왕립 미술 학교에 진학, 런던에서의 미술 활동이 시작되었다. 대영 박물관에 출입하면서 여러 나라의 조각의 접하게 된 것도 이 때부터였다. “젊은 조각가로서 나는 대영 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고, 그 곳에서 걸작품들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무어의 해외 미술 여행은 25년 왕립 미술학교의 여행 장학금을 얻어 6개월 간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한 것이 처음이면 이 때 미켈란젤로나 지오토, 마사치오를 연구했다.
1928년. 그는 첫 공공 작품으로 지하철역을 위한 부조 작품을 위촉받았고, 이듬해 같은 학교 회화과 학생이었던 이리나 라데츠키와 결혼하여 런던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멕시코의 차크몰 조각에서 영감을 얻어 최초의 와상(臥像)이 만들어진 것도 이 해이며 그의 작품에 구멍이 나타난 것도 이 때부터였다. 1931년 개인전이 런던 레스터 화랑에서 열렸고, 이 해에 첫 추상적 형태가 등장했다. 1932년 헨리 무어는 첼시 미술 대학의 신걸 조각 과장에 위촉되어 다소의 안정을 얻었으나, 1939년 일체의 교직을 버리고 창작 생활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 후 1940년. 지금까지의 런던 생활을 정리하고 머치해덤의 페리그린으로 옮긴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던 해였다.
조각과 사유 (2004), 엄태정, 도서출판 장미
한눈에 보는 조각사 (2005) 김 석, 지엔씨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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