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장 지오노가 그려 낸 이야기는 처음 접했을 때부터 마음에 묘한 울림이 있었다. 프랑스 남동부 지방의 황량한 대지를 배경으로, 한 늙은 양치기가 묵묵하게 나무를 심고 돌보는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땅이 갈라져도, 그 사람은 하루하루 작은 씨앗을 심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기보다는 버려진 땅처럼 보였는데도,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초반에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하지만 조금씩 지켜보다 보면, 자꾸만 마음이 흔들린다. 삭막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이란 게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이 줄어들고 황무지가 확장되어 가는 상황은 조금 낯설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며 조용히 노력하는 광경은 왠지 모르게 따뜻하다. 한두 번 심고 마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한다. 누군가는 아무 소용도 없을 거라고 말해도, 그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인다. 오히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자기가 할 일을 이어가는 태도다. 독자 입장에서는 때때로 그 모습이 고독해 보인다. 하지만 계속 꿋꿋하게 걷고, 지팡이로 땅을 헤집으며 씨앗을 놓는 그의 몸짓에서 묘한 의지가 전해진다.
장 지오노가 이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작은 변화를 향한 끈기 같은 것이라고 느꼈다. 뭐라도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태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주변 환경을 바꾼다고 작가는 말해 주는 듯하다. 황량한 장소가 조금씩 초록빛으로 물들고, 사람들의 발길이 되살아나는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뛴다. 황무지가 숲으로 변하고, 마른 계곡에 물이 흐르게 되며, 마을 사람들의 삶이 다시 꽃피는 과정이 하나하나 소중하다. 이 장면들을 머릿속에 그리다 보면, 삶이 주는 포근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장 인상 깊은 지점은 양치기의 모습이다. 그는 원래부터 대단한 교육을 받았거나, 특별한 방법론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말도 많지 않고, 가진 재산도 넉넉하지 않았을 것 같다. 다만 끝없이 걸어다니며, 해가 뜨나 지나 똑같이 씨앗을 심고 또 심는다. 매일 조금씩 움직임을 반복하는데, 대단한 소란 없이 그저 그 일을 해낸다. 독자로서는 그 꾸준함이 마냥 신비롭다. 자연이 황폐해진 상황을 보고도 포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지도 않는다. 말 대신 행동으로 드러내는 태도가 더 큰 울림을 준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글 속에서 강조되는 환경의 변모다. 처음에는 마른 땅과 바람만 부는 공간이 전부였는데, 날이 흐를수록 작은 나무들이 뿌리를 내린다. 나무가 자라서 숲을 이루고, 그 숲 덕분에 기후가 조금씩 변한다. 비가 자주 내리게 되고, 토양이 비옥해져서 다른 초목도 자랄 수 있다. 그러자 새와 동물들이 찾아오고, 인간도 다시금 돌아오기 시작한다. 이 과정이 갑작스러운 기적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쌓인 노력 끝에 얻어진 결과라서 더욱 감동이 크다.
작중 화자는 나중에 다시 프로방스 지방을 방문했을 때, 완전히 달라진 풍광에 놀란다. 처음에는 텅 빈 대지였는데, 시간이 흐르며 점차 초록이 나타난다. 이미 사람들은 그 마을을 다시 찾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때 화자가 가장 크게 경외심을 느꼈던 대상은 무엇일까. 사람 한 명이 씨앗을 심는 것으로 시작된 변화가 주변 세계를 얼마나 바꿔 놓을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노동이었지만, 결국 눈부신 결실을 맺었다.
이야기가 전해주는 감흥은 현시대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환경 문제나 기후변화가 크게 대두되고 있다. 폐허처럼 변해 가는 숲이나 사막화되는 땅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이 아무리 작은 노력을 해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회의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장 지오노의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그 반대다. 꾸준함이 만들 수 있는 기적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능동적인 행동이 거대한 흐름의 초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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