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이청준이 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사람들이 만든 세계가 정말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물음이다. 섬에서 나환자들이 모여 살아가는 공간이 무대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과 화해가 있다. 보이는 건 회색빛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서로에게 던지는 날 선 질문이 숨어 있다. 무조건 모든 것을 다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자기를 지키기 위해 떠나야 하는지, 그런 고민이 맥동한다.
책은 조백헌과 이상욱이라는 두 인물을 중심에 둔다. 두 사람은 외형적 위치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비슷한 지점을 품고 있다. 그런데 처음에는 둘 사이가 굉장히 달라 보인다. 조백헌은 소장으로서 섬을 잘 운영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다. 이상욱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자유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그 둘의 이야기 속에서 누가 더 옳고 누가 더 그른 것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독자는 그들의 대화를 읽으면서 여러 번 머뭇거리게 된다. 어느 쪽이 참된 진실에 가까운가. 그 질문에 곧장 답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탈출이다. 섬에 갇힌 이들에게 탈출은 말 그대로 실제적 의미를 지닌다. 환자 입장에서는 몸이 병든 이유로 사회에서 따돌림을 받았으니, 이 배제의 공간을 도망쳐 버리고 싶은 생각이 마구 일어나지 않겠는가. 그러나 조백헌은 또 다른 시선으로 탈출을 바라본다. 가혹한 세계 속에서 어딘가 자생의 공간을 만들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섬을 작은 낙원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것이 과연 옳은가.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은 이 안전한 감옥 같은 삶에 묶여야 하는가. 하나로 결론지을 수 없는 문제이기에, 한 줄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이 스며 있다.
조백헌은 나환자들을 위한 안식처를 만든다. 그가 품은 생각은 상당히 이상적이다. 누군가에게는 연민의 행위, 혹은 사랑의 표현 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묘하게도 강제성과 시혜가 자리 잡고 있다.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대가로 순응을 바라는 태도가 없다고 하기 어렵다. 그 안에 권력 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이로운 목표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주인이 따로 있고 이웃은 그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진정한 자유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 물음이 마음속에 다가온다.
이상욱은 사람들의 손길을 받는 대신, 자기만의 방식으로 떠나고자 한다. 이미 마음속에 생긴 갈망이 있다. 그가 버틴 이유도 일종의 희망이 아니었을까. 이 섬에서 탈출한다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고 본다. 물론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육지에 간다고 해서 낙원이 보장되지 않는다. 거친 세상이다. 그런데도 그만은 그쪽으로 달려가려 한다. 그게 잘못된 선택인지, 혹은 새로운 길인지는 독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어떤 이는 그를 용감하다고 느낄 것이고, 어떤 이들은 무모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소설 전반에서 정상성이라는 잣대가 얼마나 폭력적인가가 드러난다. 건강한 신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가려진 공간에 살아야 한다면, 그건 차별이다. 그런데 차별은 늘 합리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일어난다. 편견이란 무서운 힘을 가진다. 편견 앞에 무너진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자기들끼리 지내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혹은 그 속에서 연대하고 희망을 찾으라는 미명 아래 서로를 위로하라 한다. 하지만 마음속엔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으니, 섬에서 형성되는 작은 공동체가 얼마나 본질적인 안전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 따른다.
게다가 조백헌이 구축하고자 한 세상은 병자들이 원하는 세상이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스스로 선택한 공간이라 믿고 있으나, 속마음은 그게 아니기를 바랄지 모른다. 그래서 그곳에서 태어난 분란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필요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돌봄이 필요하며,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둘 다 필요 없다. 누군가는 도시로 나가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그냥 섬에 머무르길 바란다. 모든 사람의 생각이 제각각인데, 당신들이 바라는 목표 하나만을 위해 마음을 강요받는 상황이 생기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작품에서 두 주인공이 각자의 확고한 방식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들이 잔잔하면서도 강렬하다. 특히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반복적으로 부딪히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숨겨진 감정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다. 소장이라는 권위가 작동하는 순간, 이상욱은 더욱 반발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 가끔은 둘이 서로를 이해하는 듯한 순간도 엿보인다. 하지만 끝내 그들은 같이 손잡고 웃는 모습보다 의심과 갈등 속에서 더 자주 서성거린다. 그러면서 이야기 전체가 더욱 팽팽하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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