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유홍준
유홍준 교수가 쓴 문화기행서 중에서 일본편 세 번째 이야기는 교토라는 도시의 역사적 배경을 다룬다. 저자는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작업을 통해 자국 문화유산의 가치를 깊이 있게 전해온 인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번 책에서는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시선을 옮겨 그곳에 서려 있는 문화와 전통을 바라본다. 교토의 골목골목을 거닐며 느낀 점을 생생하게 적어내면서, 오랜 시간 축적된 문화적 자산이 어떻게 형성되고 보존되어 왔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교토라는 곳은 그 자체로 일본의 오랜 중심지였고, 미학과 전통의 흔적이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저자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그 공간에 깃든 여러 흔적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때로는 일본이 지닌 풍부한 역사와 그와 얽힌 한국과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책에서 가장 먼저 주목되는 부분은 교토가 지니고 있는 왕도(王都)의 성격이다. 저자는 이 도시가 일본 왕실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실제로 교토에는 궁궐이나 신사, 사찰이 다채롭게 분포해 있고 옛 모습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현대에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그저 관광상품으로만 이해하기엔 부족함이 느껴진다. 저자는 그런 점을 예리하게 바라보고, 현실 속에 살아 있는 역사로 해석해낸다. 예를 들어 사찰 방문을 통해 전해지는 불교 예술의 섬세함이나, 신사 건축에 담긴 신앙심의 흔적 같은 것도 여러 면에서 감상하게 한다.
이야기는 교토의 여러 명소를 순회하며 진행된다. 금각사나 은각사 같은 곳은 이미 한국 독자들에게도 상당히 유명해서, 사진으로 보거나 다큐멘터리로 접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시선으로 접근하면 조금 다른 인상으로 다가온다. 예전에 박물관 관장이기도 했던 저자는 예술작품을 대할 때 그 속에 담긴 맥락을 중시한다. 건물을 보고 “예쁘다” 또는 “화려하다”라는 느낌을 얻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재료의 특성, 시대적 배경, 그리고 그곳을 지탱해온 사람들의 사연까지 아우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한 장소가 보여주는 미학이 단편적인 외관이 아니라, 여러 층위로 쌓여 있는 문화의 흔적임을 체감하게 만든다.
교토의 오래된 골목길과 그 주변의 분위기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저자는 좁고 고즈넉한 골목에 들어섰을 때 마주치는 상점, 가정집의 담장, 작은 신사 같은 것을 유심히 본다. 그리고 그런 풍경의 배후에 놓인 역사를 조심스럽게 끄집어낸다. 교토가 변화를 거듭하면서도 본래의 분위기를 지키려 애써 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움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도시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 점이 독자들에게 더 큰 흥미를 유발한다.
때로는 그 공간이 한국과 얽혀 있음을 알게 될 때도 있다. 예전에 백제와 교류한 사실, 삼국시대의 문물이 일본에 전래된 과정, 임진왜란 이후 왕래하면서 생긴 문화적 변용 등 여러 역사가 서로 얽혀 있다. 저자는 종종 과거의 상처와 갈등을 언급하기도 한다. 다만 불필요하게 격한 태도를 취하지는 않는다. 오랜 역사 속에 긍정과 부정이 함께 얽혀 있음을 인정하고, 그 자취를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려 한다. 교토의 유적 가운데 한국과 연관된 흔적을 찾을 때, 저자는 그 배경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각각의 가치가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졌는지 보여준다.
글 곳곳에서 나타나는 저자의 태도는 한편으로는 애정어린 시선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적 사실을 소중히 다루려는 마음으로 읽힌다. 독자 입장에서는 교토라는 도시에 대해 막연히 풍광 좋은 관광지 정도로만 생각했다면, 그 인식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저자는 현지에서 직접 경험한 이야기, 과거 문헌에서 찾아낸 근거,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된 전통 예술품 등을 엮어내어, 교토가 걸어온 긴 세월의 결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책의 구성은 교토와 관련된 여러 장소를 테마별로 묶어 보여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찰 편에서는 대표적인 사찰들을 돌아보면서, 불교 미술이나 교단의 역사 등을 함께 다룬다. 왕실과 관련된 부분은 천황가의 이동과 생활, 그리고 그것이 일본 문화 전반에 미친 영향을 곁들여서 설명한다. 이렇게 한 도시를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방식 덕분에, 독자들은 교토를 한눈에 이해하기보다는 여러 갈래로 접근하게 된다. 이때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의 기록도 꽤 흥미롭다. 예를 들어 예전 지식인이나 예술가들이 교토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어떤 기록을 남겼는지 인용하는 경우가 있다.
또 다른 묘미는 저자가 관찰한 디테일이다. 그냥 지나칠 법한 골목 표지판, 가게 간판, 낡은 가옥의 지붕에 남아 있는 장식 등. 그런 작은 요소도 그냥 넘기지 않고, 역사적 의미를 찾아본다. 예전에 누가 만들었고, 왜 저런 형식으로 남아 있는지 추적한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마을 풍경에도 오랜 전통이 배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어쩐지 교토의 골목을 함께 걷는 기분이 들게 된다.
독자들 중에는 한국의 문화유산과 비교해보며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자도 한국과 일본이 서로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언급한다. 교토에 있는 사찰의 양식이 신라나 고려 시기의 어떤 흐름과 닮았는지, 혹은 그와 다르게 완전히 독자적인 길로 발전했는지 살핀다.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민족이지만, 건축과 예술의 어떤 부분에서는 꽤 긴밀한 교류가 이뤄져 왔음을 실감하게 만든다. 이런 부분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시선은 편협함 없이 균형을 잡아주려 한다.
저자가 여러 해 동안 문화 기행을 진행해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작업 역시 단발적인 호기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미 국내 문화유산에 대해 심층적으로 고찰해온 이력이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주변 국가의 유산에도 관심을 확장한 모습으로 보인다. 교토에서 찾은 사소한 조각 하나, 오래된 돌기둥 하나라도 소중하게 대하며, 그것이 현대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줄 수 있을지를 숙고한다. 때로는 사찰의 현판에 적힌 글씨체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오래전 서예가들이 지녔던 미감과 철학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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