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엔도 슈사쿠
엔도 슈사쿠가 쓴 작품은 17세기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는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종교가 은밀하게 전파되었고, 엄격한 탄압이 벌어졌다. 가끔 누군가가 성직자로서 그곳에 온다는 소문이 퍼지면 감시가 더욱 심해졌다. 주인공 로드리고 신부도 그러한 압박 속에서 고통스러운 길을 걷게 된다. 그가 가진 믿음과 현실 사이에는 늘 긴장감이 감돈다. 신앙을 전파하겠다는 열망이 있었으나, 여러 순간에 닥쳐오는 가혹한 경험에 휩싸이게 된다. 먼 나라에서 배웠던 성서적 가치관과 눈앞에 펼쳐진 무자비한 처우가 서로 충돌하는 국면이 반복된다.
로드리고 신부는 조용히 그 땅을 밟는다. 그곳에서 만난 신자들은 자신들의 희미한 소망을 지키기 위해 숨어살며 괴로움을 견뎌온다. 당국은 외국에서 온 성직자를 잡아들이고자 온갖 함정을 파놓는다. 많은 사람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로드리고 앞에 서서 도움을 청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궁핍한 환경 속에서 사소한 위안도 크나큰 은총으로 받아들인다. 종교적 예식마저 몰래 감추어야 하고, 비밀리에 바닷가에서 작은 성물을 주고받는 모습이 그려진다. 어둠 속에서 속삭이며 드리는 기도가 간절하게 전해진다. 그러다 언젠가 당국이 그 자리에 들이닥치면 사람들은 울부짖는다. 숨어 있던 모든 헌신이 한순간 위기에 몰린다.
로드리고가 처음 들었던 이야기는 한 성직자가 이전에 배교했다는 충격적 소문이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며 의심했지만, 점차 그 말이 진실임을 알게 된다. 도무지 꺾이지 않을 것 같았던 신부가 현지에서 발을 디디며 처절한 과정을 겪은 뒤 발길을 돌렸다는 사실에 절망을 느낀다. 로드리고는 스스로 의심을 품는다. 자신도 같은 길을 걷게 될까 두려워한다. 의지를 다잡아보려 하지만, 탄압의 칼날은 점점 날카롭게 다가온다. 포기할 것인가, 끝까지 버틸 것인가. 그리고 그 끝에서 과연 신은 무어라 대답할까. 마음속에서 소용돌이가 치는 장면이 생생하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해변의 풍경 속에서, 혹은 깊은 산골짜기 마을에서 몸을 숨겨야 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처절한 고문과 심문에 수많은 신자들이 희생된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 고통을 떠안고 있다. 부유한 사람은 거의 없고, 생계 자체가 위태롭다. 종교적 열의는 있지만, 고통 앞에서 인간은 흔들린다. 로드리고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언뜻 보면 강인해 보이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과연 끝까지 견딜 수 있을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멀리 있는 본국에서는 일본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로드리고가 느끼는 외로움은 점점 깊어진다.
당국은 완고하면서도 교묘하다. 성직자를 직접 처벌하기보다는 신자들을 앞세워 그 신부의 양심을 시험하려 든다. 신부가 믿음을 지키면 신자들은 고통당한다. 신부가 배교하는 순간, 신자들은 좀 더 안전해진다. 이런 방식으로 벌어지는 심리적 압박은 극에 달한다. 로드리고는 무력감에 빠진다. 자신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는 모습을 눈 뜨고 볼 수 없다. 신을 향해 기도를 올려보지만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는다. 마음속에는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신가’ 하는 물음이 가득하다. 여기서 제목이 강조된다. 누구에게 호소해야 할지 막막하다.
주위에는 두 얼굴을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조금 비겁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다시 신부를 찾아오는 기치지로가 대표적이다. 겉으로는 간사해 보이고, 위기의 순간에 배신을 서슴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줄곧 로드리고 앞에서 눈물 흘린다. 자신은 나약하고,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지만 무서워서 배반을 반복한다. 그 모습이 위선적이면서도 애처롭다. 로드리고는 그를 혐오하면서도 미워할 수가 없다. 그 안에 숨은 간절함과 후회가 너무나 절절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만남은 계속되고, 둘 사이에 묘한 유대가 싹튼다. 아픈 상황에서 허우적대는 인간들의 초라한 모습이 겹쳐진다.
주인공은 고통받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로드리고가 붙잡힐 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심한 상황이 이어진다. 사람들을 물에 매달아놓고 서서히 죽여가는 장면이 펼쳐진다. 그런 끔찍한 방식으로라도 신부가 믿음을 버리고 무릎을 꿇기만을 강요한다. 보는 이가 괴로움을 느끼도록 만드는 처벌이 계속된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신자들의 고통 섞인 비명이 로드리고에게 큰 죄책감을 안겨준다. 그는 스스로 생각한다. ‘모든 것을 감수하더라도 신앙을 증언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타협해야 하는가.’ 그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현지 관리들은 나름의 이유로 종교를 금지하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 외국 성직자는 위험한 존재다. 외부 사상이 뿌리를 내리면 자신들의 질서가 흔들린다고 느낀다. 그래서 철저히 탄압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짓밟기도 한다. 폭력이 거듭되고, 사람들이 숨 막혀한다. 그 와중에 로드리고는 신이 왜 침묵을 지키는지 묻는다. 고통받는 이들이 저토록 많은데, 왜 어떤 징표도 나타나지 않는가. 이 물음은 이야기 전반에 어둡게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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