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중세 시대에 대한 궁금함이 남아 있을 때 접하게 된 작품이었다. 해박한 지식과 방대한 배경 설명이 결합된 내용이라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14세기 무렵의 수도원 생활, 교회가 지닌 엄격한 분위기, 그 안에서 숨죽인 채 살아가는 수도사들의 모습 등이 무거운 느낌을 주었다. 때로는 긴장감과 호기심이 교차했다. 진리와 신앙, 그리고 금기로 가득 채워진 공간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그림자가 색다른 방식으로 다가왔다.
바스커빌의 윌리엄이라는 영국 출신 수도사가 주인공이다. 철학적 사고와 추리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 인물이 중세적 사고방식의 벽을 두드리면서 사건과 마주하는 장면들이 인상 깊었다. 거대한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이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다. 윌리엄이 맡은 임무는 사건 해결이다. 그러나 그런 임무보다 더 광대한 무언가가 배후에 놓여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교회 내부의 권력 다툼, 책과 지식에 대한 집착, 그리고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감춰져 있는 인간의 이기심이 고개를 든다.
주변에서 이 이야기는 미로 같은 구조의 장서관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윌리엄이 그 미궁 내부를 헤매면서 조심스럽게 단서를 찾아가는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수도원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이며, 허락된 이들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다. 책이란 무엇이며, 그 책을 지키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책 자체가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 상황이 무척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보통은 성직자들이 신의 말씀을 탐구하고 널리 알리는 목적을 가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모든 것 위에 권력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건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여러 수도사들이 차례차례 희생된다. 그때마다 고요한 수도원에 음산한 분위기가 감돈다. 윌리엄이 머리를 굴리지만, 무거운 공기 속에서 사건이 더 깊어지는 느낌이 강했다. 연쇄 살인이라는 사실은 자극적이지만, 그 자체보다도 그 배경에 놓인 철학과 신학, 상징과 은유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교회 권력과 신앙의 성격, 이성이 자리 잡을 곳을 찾기 힘든 시대 상황 등이 접목되어 있었다. 중세 유럽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흥미로운 통로처럼 보였다.
윌리엄 곁에는 아드소라는 시자가 함께한다. 이 인물의 시점이 독자에게 많은 부분을 전해주는 통로가 되었다. 사실 아드소는 윌리엄의 사고방식을 감탄하며 따라가는 편이지만, 때때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면 윌리엄의 합리적 추리가 얼마나 독보적인지를 알게 된다. 14세기라는 시기에는 과학적 접근이나 논리적 방식이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는데, 윌리엄이 보여주는 탐정다운 태도는 색다른 충격을 안겨주는 것 같았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이 다루는 사건은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지점에 놓인 듯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고루 읽으면서 가장 눈길이 갔던 장면 중 하나는 장서관을 둘러싼 음모였다. 맹인 수도사 호르헤가 그곳을 마치 자신의 왕국처럼 지배하는 모습이 음침하게 다가왔다. 본래 종교적 공간이라면 더없이 깨끗하고 성스럽게 느껴져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결코 단아하거나 온화하지 않다. 책을 통해 세상을 읽고 싶어 하는 윌리엄과, 책을 차단하고 싶어 하는 호르헤 사이에 놓인 간극이 매우 인상 깊었다. 호르헤가 품고 있던 악의가 단지 개인적인 야망인지, 아니면 지식과 웃음에 대한 공포심에서 비롯된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예언과 종교적 상징에 집착하는 호르헤가 연쇄 살인을 기획한다. 요한의 묵시록에 따라 하나하나 살인이 이루어진다고 믿게 만들어 사건을 더 미궁 속으로 몰아넣는다.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 묵시록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인지 착각하게 될 정도로 묘사된다. 금기를 어기면 죽음이 온다고 믿는 공포심이 수도원 전체를 뒤덮는다. 그 과정이 긴장감 있게 펼쳐져서 마치 한편의 고딕 미스터리를 읽는 느낌이었다. 역사적 진지함과 자극적인 사건이 동시에 들어 있어 묘하게 빠져들게 되었다.
작가가 의도한 것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차, 방금 위험한 표현을 쓰려 했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해보겠다. 작가는 이 이야기에 역사와 철학, 신학과 예술을 함께 녹여냈다. 모든 장면이 철저한 고증을 거친 것처럼 보일 정도로 디테일에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수도원 건축 양식이라든가, 수도사들이 일상적으로 하던 기도와 신앙 의식 같은 세부 사항이 빼곡히 들어 있다. 대개 그런 세세함이 독자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당대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거기에 더해 윌리엄의 이성적 사고방식이 가미되면서, 무거운 공기도 서서히 흥미로운 퍼즐로 변해갔다.
본격적인 사건 전개와 함께, 수도원 외부의 상황도 은근하게 비춰진다. 교황과 황제 사이의 갈등, 내부에서 벌어지는 이단 논쟁, 다른 수도사들과의 마찰 등도 그려진다. 어느 시기나 권력과 이념이 얽히면 다툼이 생긴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윌리엄이 수도원에 온 계기는 그런 정치적 이유도 일부 작용했다. 그의 진짜 목적은 미팅에 참여하여 교황청과 관련된 문제들을 의논하려는 것이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잔혹한 사건이 일어나자, 우선순위가 완전히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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