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
김희경
김희경이 쓴 책은 기존의 가족 개념을 흔들어 놓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느껴진다. 저자는 가족이란 울타리가 때로는 아이를 보호하기보다 억압하고 통제하는 장치가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많은 이들이 가정에서 사랑을 주고받으며 자란다. 그 따뜻한 경험을 떠올리면 가족은 흔히 가장 안전한 공간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저자는 그 막연한 환상을 해체하려 한다. 가족이 아이에게 얼마나 위협적일 수 있는지, 한편으로는 숨 막힐 정도로 무거운 책임감의 무대가 될 수 있는지 드러낸다.
저자가 다루는 핵심은 아이를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의 문제다. 어른들은 종종 아이의 감정이나 생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체벌이나 무리한 규칙을 요구하는 장면을 주변에서 쉽게 본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가 쌓여서 아이가 당연히 ‘부모의 소유물’처럼 취급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저자는 이런 인식이 결국 법과 제도에서조차 아이를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필요한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고발한다.
가족 내부의 폭력은 때로는 사회에서 관용되고 묵인된다. 어떤 집에서 목소리를 높이거나 손찌검이 발생해도, 주변에서는 “집안 문제니까 함부로 간섭하기 어렵다”라는 태도를 보인다. 특히 예전 세대에서는 체벌을 사랑의 표현으로 여기는 흐름이 강했다. 그 흔적이 지금도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렇게 아이를 성장시키는 데 있어서 엄격한 통제와 강압이 유익하다고 믿는 분위기다. 저자는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된 가정인지 책 전반에서 말해준다.
아이를 성숙한 인간으로 키우기 위해서라면, 그 바탕에는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 번 굳어진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특히 가족주의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아이는 집안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존재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그런 환경에서 기성세대가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은 ‘말 잘 듣는 자녀’가 되는 것이다. 자유로운 의사는 크게 존중되지 않는다. 아이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선택이 가능한지 모른 채 어른이 제시하는 틀 안에서만 성장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가족의 결속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을 비판한다. 함께 산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의 인권을 침해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당연히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 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도 많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들이 어른의 하위 개념에 머무르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아이가 하나의 개체로서 존중받으려면, 제도가 적극적으로 그들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시스템적 관점에서 살펴볼 부분도 많다. 가정 안에서 발생하는 학대나 폭력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여기는 사회 구조가 문제다. 예컨대 교육기관에서 아이가 지속적으로 상처받고 있다고 호소해도, 교사가 “가정 문제 아니냐”며 제대로 돕지 못하는 상황이 있다. 아동 보호 전문기관이 있긴 하지만, 실질적 개입은 더디거나 소극적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사각지대가 얼마나 넓은지 고발하고, 또 사회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이들은 여전히 그 폭력의 굴레에 갇힌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부모나 보호자가 항상 악의적인 태도로 아이를 학대하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는 자기 나름의 사랑과 책임감으로 아이를 돌본다. 문제는 아이를 이해하는 눈이 너무나 좁고 편협할 때 생긴다. 예컨대 아이가 개인으로서 가지는 욕구를 무시하고, 어른의 가치관을 강제로 주입하려 할 때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 어떤 이들은 “어린이에게는 이런 방식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정말 아이에게 최선인지 숙고할 기회를 갖지 않는다. 저자는 그 부분을 환기한다. 아이도 존엄이 있고, 자기만의 고유한 감각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성인을 중심에 둔 제도와 문화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불리한지 깨닫게 된다. 언어권에서조차 아이들은 어른에게 존댓말을 사용해야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다. 사소한 차이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권위적 구조를 암묵적으로 강화한다. 집 안에서 어른이 화를 내거나 폭언을 해도, 아이는 반박하기 어렵다. 서로 동등한 주체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그 점을 우리 사회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른이 아이를 지배하거나 통제하려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면, 세대 간의 괴리는 점점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필요한 것은 맞다. 누구나 가까운 이들과 함께 협력하고 정서적 안정을 주고받아야 한다. 그러나 가족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그 공간이 폭력과 억압을 생산하는 장으로 변질된다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묵과할 수 없다고 저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더불어 자녀를 사랑한다면서 가하는 통제나 간섭이 과연 진정한 사랑인지 되물을 것을 제안한다.
책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때로는 어린 시절에 부모가 한 말이나 태도가 평생의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때 주변 어른들은 “어린 시절에는 어느 집이나 다 그럴 수 있다”고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한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이미 충분히 아프고 두려운 순간이었다. 저자는 그걸 아동 인권의 문제로 직시하자고 한다. 어떤 이들은 “모든 가정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한다. 물론 문제 없는 가정도 많다. 그러나 적지 않은 아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환경에서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가족의 형태를 획일적으로 바라봤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부모가 있고 자녀가 있고, 그 틀을 유지하려 애썼다. 한부모 가정이나 재혼 가정 등은 그동안 편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아이 입장에서 그런 편견은 더 큰 상처가 된다. 저자는 가족의 형태보다는 그 안에서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부모가 둘이든 하나든,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핵심이라는 얘기다. 전통적인 가족 모델이 무조건 정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
아이의 인권을 강조하면서, 저자는 헌법이나 법률에서조차 아동을 주체로 충분히 다루지 않는 현실을 지적한다. 어른을 우선시하는 사회에서 아이는 늘 뒤로 밀린다. 폭력 상황을 겪어도, 아이 스스로 도움을 청하기가 어렵다. 도움을 청한다 해도 당장 달라지는 게 없으니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어른이 아이를 보호할 책임이 있음에도 그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것이 잘못된 구조라고 말한다. 아이를 보호하되, 동시에 그들이 가진 주체성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사회가 되려면 법적·제도적 장치가 훨씬 촘촘해져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 책은 여성주의적 비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이를 중심에 둔 문제제기를 시도한다. 기존에 가족담론에서 여성의 권리는 많이 논의되어 왔다.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여성이 얼마나 차별받고 억압받아 왔는지를 조명하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중심으로 한 관점은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저자는 가족의 가장 약한 고리가 아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목소리를 낼 공간조차 얻지 못하는지 짚어낸다. 그리고 사회가 아이에게 부여한 무거운 기대나 ‘착한 아이 콤플렉스’ 같은 것을 지적한다. 어른에 순종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아이가 모범적이라고 여기는 풍토가 얼마나 해로운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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